오늘 출근하고 퇴근은 다음날 하는 촉박한 스케쥴이 몇달 째 계속되면서 회사 자료실에 정리해야 할 책들이 제법 쌓여가기 시작했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책들과 넘쳐나는 종이자료는 출판편집회사들이 비슷하게 안고 있는 고민들이다.
어느날인가. 새 해만큼은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겠다는 생각으로 사무실 식구들은 벼르던 자료실 정리를 강행했다. 신문·잡지 스크랩 자료, 사진 원고와 텍스트 원고, 교정지 뭉치, 주고받은 공문서들, 참고 책자, 우리가 발간한 책과 결과물들, 디자이너들이 만든 클립아트, 파일 등이 주요 정리대상이었다.
우리는 정리하던 손을 자주 멈추고 한 해동안 디자인하고 결과물을 만들던 기억들을 공유하곤 했다. 책에 쓰일 몇 개의 일러스트레이터를 위해 비슷한 백 몇개를 그린 작업, 그 그림 스캔받고 보정하느라 밤샘 한 일, 타이포의 느낌을 살리려고 사무실 마당에 있는 대나무 뿌리를 뽑아서 손글씨를 썼던 일 등…. 그 과정의 진중함까지 독자께서 알랴만은 그 모든 것들이 우리의 힘든 시간과 수고로움이 한꺼번에 녹아있는 보상물이다.
일을 하다보면 기획자나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수고를 할 때가 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수많은 시안을 만드는가 하면, 완성도 높은 작업을 위해 자청해서 몇날을 사뭇 '기특한' 밤새움을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정한 클라이언트의 눈썰미에 밀려 '꺅'소리 한번 못 지르고 시안이 바뀌고 수정되는 과정을 겪고는 한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이 없건만,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타박맞는 우리의 수많은 시안들로 가슴이 멍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이미 고급스러워지고 안목도 높아진 클라이언트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출판업계와 디자인업계는 늘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프로그램도 업그레이드 되고 디자이너에게 선택 한번 받아보지 못한 서체가 끝없이 태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자이너나 클라이언트를 모두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은 무엇일까? 누구는 세상에 더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고 했는데, 역시 우리의 키워드는 새로운 것에 대한 의존이 아니라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정신과 배려있는 사용으로 풀어가야 할 것이다.
새해에는 우리들의 상상속에 태어났다가 빛도 못보고 사그라진 작업들이 날개를 달았으면…, 우리가 만든 책이 사람들 마음에 작은 울림을 주었으면…, 각자 다른 모습으로 만나 '종이위의 바른생각'이라는 '하나'된 목표를 향해 부단히 뛰는 우리들의 수고로운 결과들이 모두 좋았으면…. 생각만으로도 즐거운 상상이다.
나윤희 출판편집디자인 홍익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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