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세밑이 조용히 지나가는가 했더니 또다시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일이 벌어졌다. 그 발단은 세칭 노 대통령의 '평통발언'이었다. 노 대통령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 참여정부의 남북정책, 안보정책, 한미관계, 작전통제권, 군 개혁 등에 대해 설명을 하고자 했다.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이 자신이 펼쳐갈 정책에 대해 설명을 하고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대통령이 각종 사안에 관해 너무나 상세하게(?) 설명을 했지만 많은 국민들이 불편해하고 있다. 국민들이 불편해하는 이유는 참여정부가 펼치려는 통일외교안보정책이라기보다 대통령의 사고방식과 행동거지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탁자를 내리치며 연설하는 모습은 국민들을 무안하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은 연설에서 평범한 보통 시민이 사용하기에도 부적절한 단어들을 거침없이 사용하고 있다. 말투 역시 국민을 존중하고 설득하려는 말투가 아니라 협박성 어투를 사용하고 있다.
대통령은 자신이 기용하여 국정에 참여시킨 고건·김근태·정동영 씨 등을 비난하고, 전시작전통제권 회수에 반대한 국방원로들에 대한 폄하를 서슴지 않았다. 지난 4일 정부청사에서 고위 공무원들과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도 언론에 대한 막말을 쏟아냈다.
노 대통령은 링컨 대통령을 배우고 싶다고 수없이 말해왔다. 링컨을 배우고 닮아보려는 대통령의 의도는 매우 훌륭한데 현실의 결과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노 대통령은 '평통연설'에서 '링컨 흉내 좀 내려고 해 봤는데, 그게 잘 안 되네요'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런 고백의 원인은 링컨의 사상과 정신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섣부른 흉내만 내었기 때문일 것이다. 노 대통령의 연설을 들어보면 그가 링컨의 이 말을 기억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되고자 결심한 사람일수록 언쟁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법이다. … 이쪽에 반쯤의 타당성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크게 양보하고, 자신이 만만한 일일지라도 조금은 양보하라."
링컨 대통령의 이 말은 언쟁을 벌이는 것이 얼마나 소모적인 일인가를 지적하면서 논란이 있을 때 지도자가 양보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링컨 대통령은 자신의 이 말을 철저히 실천했다. 링컨은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을 국가적 재난이라고 비난하던 스탠턴을 국방장관에 임명함으로써 자신의 반대편에 선 사람을 포용했다.
그리고 남북전쟁이 끝난 후 링컨은 "우리 모두는 남부의 주들이 탈퇴했다 돌아온 것을 형제들이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것으로 생각하고, 그들을 도와주며 절대 죄를 물어서는 안 됩니다."고 말하면서 남부 주들을 감싸 안았다. 이렇듯 링컨 대통령의 위대함은 노예해방과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사실에서가 아니라, 양보와 겸손의 정신으로 당시에 갈라져 있던 남과 북, 백인과 흑인을 통합하여 하나의 미국을 건설했다는 데 있다.
그런데 링컨을 배우고 싶어한다는 노 대통령은 지난 4년간의 발언에서 양보와 겸손의 정신보다 이분법적이고 흑백논리에 따른 투사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노 대통령이 취임한 후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진보와 보수의 대립, 코드(code)에 맞는 사람과 맞지 않는 사람, 386세대와 나머지 세대 등으로 분열되어 언쟁과 반목을 거듭해왔다.
이제 대통령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았다. 結者解之(결자해지)라고, 취임 이후 벌어진 우리사회의 분열과 언쟁을 당사자인 대통령이 감싸 안아 치유해주길 기대한다. 대통령이 연설에서 밝혔듯이 올해에는 "모든 것을 힘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대화로서 해야 되는 것인데요. 이 대화의 전제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해야 됩니다. 상대방의 의견이 옳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해야 됩니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해야 됩니다."라는 말을 스스로 실천하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임기 말년에는 조금이나마 링컨을 닮은 노 대통령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이 또한 황금돼지의 꿈을 이루는 것이 아닐까?
김명현(대구가톨릭대 사무처장·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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