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은 바보야!" 링컨 미국대통령이 측근의 말만 듣고 군부대의 몇 개 연대를 이동시키라는 명령을 전달받은 국방장관 스탠톤이 대통령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내린 바보 같은 결정이라며 명령이행을 거부하면서 한 말이다.
그러나 링컨은 그 말을 보고받고도 "스탠톤이 날 바보라고 했다면 그 말이 맞을 겁니다. 그는 실수한 적이 별로 없으니까요" 라고 한 뒤 스탠톤을 찾아가 설명을 다 듣고는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즉시 명령을 철회했다. '링컨은 바보야' 일화는 부하의 비판까지도 흔쾌히 환영하고 받아들인 링컨의 지도자로서의 포용을 말하고 있다. 그런 링컨을 가장 본받고 싶은 인물로 꼽았던 노무현 대통령이 만약 장관이나 말단 공무원한테 '노무현은 바보야'라는 말을 들었다면 어떻게 나왔을까. 자신이 감동받았다는 링컨의 포용력을 본받아 '바보'라는 비판까지도 받아주고 포용해 줄까.
지난주 언론을 不良(불량)상품이라고 비하하며 공무원들에게 언론에 무릎 꿇지 말고 맞서 싸우라고 한 분위기를 보면 아무래도 포용 쪽은 아닐 것 같다. 손님격으로 초대된 노동자 대표(한국노총위원장)조차 '대통령께서 앞으로 가급적 말을 아껴 주셨으면 좋겠다'고 한 마디 건넸다가 되레 '말을 가려서 하라'고 면박을 당하는 판에 공무원이 '공직자가 왜 언론과 서로 무릎 꿇리는 바보 같은 싸움이나 해야 합니까'라는 쓴소리를 해줄 리 만무하다. 포용력을 보여주지 않는 지도자 밑에 스탠톤 같은 부하가 나올 리가 없는 것이다. 퇴역 국방장관 군장성들이 쓴소리를 진언하면 '거들먹거린다'며 공개적으로 핀잔을 주는 대통령과 자신을 바보라고 비판한 국방장관의 쓴소리를 찾아가서 경청한 대통령의 그릇의 차이인 것이다. 그래서 노 대통령께서는 링컨을 잘못 읽었거나 링컨의 리더십을 깊이 있게 소화하지 못한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그 자신이 쓴 '노무현이 만난 링컨'에서는 '…우리가 심판받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를 심판하지 않도록 합시다. 누구에게도 원한을 갖지 말고 모든 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라는 링컨의 연설문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링컨이 '승리'니 '패배'니 하는 말을 쓰지 않으려 했고 남부군을 적으로 몰아세우지도 않았으며 화해와 사랑을 이야기한 것이 부럽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은 언론을 적으로 몰아세워 공직자에게 무릎 꿇지 말라며 승리와 패배를 말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깎아내리고 심판했다.
賢人(현인)의 모범을 본보려면 제대로 본봐야 본받는 자신도 같은 수준의 언행일치가 나온다. '처음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더니 조금 깨닫고 나니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었으나 더 깊이 깨닫고 보니 다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었다'고 한 靑原惟信(청원유신) 禪師(선사)의 말씀처럼 겉멋 본뜨기가 아니라, 깊이 있는 깨달음이 있어야 뭣이든 제대로 따를 수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 지도자는 언론이란 불량상품에 포위된 게 아니라 자기주변의 '불량상품'속에 둘러싸여 있는 듯한 모습이다. 지지율 떨어지니까 主君(주군) 버리고 黨(당) 떠나는 不良家臣(불량가신), 초대손님도 쉽게 해주는 직언과 쓴소리를 입 밖에도 못 꺼내는 '불량신하'들에 둘러싸여 스탠톤의 '링컨은 바보' 같은 직언을 듣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링컨처럼 꿀릴 것 없이 잘하고 있다고 자찬하고 있다.
탈무드에는 이런 말이 있다. '사람들은 걸어가다 걸려 넘어지면 제 탓은 않고 우선 돌부리 탓으로 돌린다. 돌이 없으면 구두 탓으로 돌리고 구두도 탓할 게 없으면 언덕 탓으로 돌린다.' 자기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라는 겸허함을 가르친 말이다.
언론이, 국민이, 초대된 손님이, '민심을 모르는 바보'라고 하면 한 번쯤 그들 말이 맞는 모양이다고 고개 기울여 보는 솔직함과 겸허함이 바로 링컨을 제대로 닮는 길이다. 새해엔 남의 탓 안 하는 '동양의 링컨'이란 애칭이라도 얻기를 진심으로 고대한다.
金廷吉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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