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려한 강원도 동강의 고장 영월에서 태어나 대구문화방송 사장을 지내고, 최근까지 경주세계문화엑스포조직위원회 사무총장으로 일해 대구·경북과 인연이 깊은 유흥렬(柳興烈·65) E&B Stars 회장을 만났다.
유 회장은 MBC-TV의 역사와 함께했다. 지난 1969년 8월에 개국한 MBC-TV에 유 회장이 공채1기와 함께 프로듀서(PD)로 입사한 것이 개국 2달 뒤인 10월. 그후 30년간 MBC에서 일했다.
그동안 연출한 작품은 무수하다. 주제가가 국민들의 애창곡이 된 '봄비', '엄마 아빠 좋아'가 대표적이고, '거상 임상옥'으로 잔의 70% 이상 술을 채우면 흘러내리는 계영배(戒盈杯)의 신비를 전해 인간의 욕심을 경계하기도 했다. 특히 김종학 연출의 '동토의 왕국'은 그가 자랑스러워 하는 작품이다.
"제가 기획했습니다. 방송에 처음으로 김일성 사진과 인공기가 나와 사회에 충격을 던졌지요. 반공-승공에 이어 지공(知共)이란 말이 갓 나왔을 때 지공의 컨셉에 맞춘 첫 방송 작품이었습니다."
그는 또 일일연속극 '수선화'에 대한 기억도 떠올렸다. 방송작가 김수현 씨가 데뷔 직후 대본을 쓰고 역시 갓 데뷔한 연예인 김자옥 씨가 주연을 맡아 시청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가 PD가 된 것은 우연이다. 모교인 서라벌고는 예술계 고교는 아니었지만 학교에서 예술활동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 덕분에 유 회장도 광주에서 열린 학생의 날 기념 전국연극제에 참여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후 여러 연극무대에 섰고 본격적으로 연출을 공부하기 위해 동국대 연극영화과 2기생으로 입학했다. 당시 방송인 재원이 많지 않던 시절이라 연극배우로서 경험과 연출을 전공한 그를 MBC가 스카우트한 것은 당연한 일. 30년간 방송인으로 일하며 백상예술상과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은 것은 작은 기쁨이었다.
E&B Stars는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해 중국 등지에 판매하는 프로덕션이다. 이순(耳順)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할 일이 있다는 게 그로서는 고마운 일이다. "지금 일을 그만두면 은퇴가 아니라 조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회사가 중국에서 제대로 뿌리 내리고, 베트남과 남미 등 국가에 새로 진출하도록 최선을 다해 일할 생각"이라고 했다.
대구·경북, 특히 경주세계문화엑스포조직위에 대한 얘기를 어렵게 꺼냈다. 먼저 경주세계문화엑스포를 과대포장해서는 안 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경주-앙코르와트 세계문화엑스포는 지방정부가 국제 문화행사를 개최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경주엑스포에 대한 평가는 냉정해야 합니다. 세계문화엑스포라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경주라는 지역성이 바로 정체성입니다. 경주는 신라의 고도이지 대한민국 전체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지요. 신라문화, 불교문화에 천착해야 한다고 봅니다."
유 회장은 경주 세계문화엑스포조직위의 변화도 주문했다. "경주 세계문화엑스포를 이제 4회 치렀습니다. 외국과 공동으로 행사도 했고요. 이제 자립 기반을 다질 때가 됐습니다. 민간재단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죠. 언제까지 국비에 의존해 행사를 할 겁니까? 문화재단은 경기도도 있고 전북도 있고 부천시도 있습니다. 경북도만 없지요. 엑스포 행사를 경북도가 행정적으로 접근하니 여러모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는 조직위를 주식회사로 전환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모 건설회사에서 큰 제안을 해왔습니다. 조직위가 확보하고 있는 40만 평을 위락단지로 만들고, 태양광발전소를 만들고 경주고속철역사에서 감포까지 모노레일을 깔아 국내외 관광객이 즐겨 찾을 수 있는 관광 경주의 위상을 되찾겠다는 구상이었지요. 다만 민자를 투자해 5년내에 원금을 회수할 수 있는 보장이 없으니 사회간접자본 투자로 간주해 적자가 발생하면 정부나 지자체가 예산으로 보전하는 조건을 달았지요. 개인적으로 괜찮은 제안이라고 봤습니다만 결정할 주체가 없어 제안서가 책상 서랍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경북도와 경주시가 조직위의 지분을 5대 5로 갖고 있어 서로 결정을 미룬 결과라고 봅니다."
이는 유 회장이 조직위 사무총장으로서 3년간 좌충우돌하며 어렵게 일한 경험 끝에 내린 결론이라 하겠다. 핵심은 경북도나 경주시가 경주엑스포에서 이젠 손을 놓아야 한다는 것과 함께 내용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 내용은 신라문화와 불교문화로 경쟁력은 충분하다고 본다. 다만 작은 규모라도 상시 개장해 놓고 관광객이 즐겨 찾을 수 있는 경주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유 회장은 "이의근 전 지사가 경주엑스포를 시작했다면 김관용 지사는 이제 자력 구도를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고 다시 한번 변화를 강조했다. 천년 고도 경주를 방치하다시피 하고 있는 대구·경북이 유 회장의 이러한 고언(苦言)을 어떻게 들을지 궁금하다.
서울정치팀장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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