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국의 제리 맥과이어를 꿈꾸며'…스포츠 에이전트

"한국의 제리 맥과이어를 꿈꾸며…."

선수와 팬, 구단 그리고 에이전트. 축구계를 움직이는 네 축이다. 프로야구와 달리 프로축구는 에이전트가 거의 모든 계약을 대행한다.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된 에이전트 업계는 스타선수 관리에서 무명선수를 발굴하고 키우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Show me the money"라는 대사로 유명한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제리 맥과이어'는 스포츠 에이전트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묘사해 화제를 모았다. 이 영화는 세계적 스포츠 에이전시인 IMG의 회장 마크 매코믹의 실화를 토대로 했다. 매코믹은 1960년 프로골퍼 아놀드 파머와의 계약을 디딤돌로 IMG를 38개국에 80여 개 지사를 가진 세계적 매니지먼트 회사로 키워낸 주인공이다.

최근 '한국의 제리 맥과이어'를 꿈꾸며 스포츠 에이전트의 세계에 뛰어드는 3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외국어와 해외 학위로 무장하고 젊은 패기로 열심히 뛰고 있다.

대구에 본사를 둔 스포츠 에이전시인 이반스포츠의 '새내기 에이전트' 3명은 "축구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에이전트의 길을 걷고 있다."면서 "선수들이 경기에만 전념하고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묵묵히 뒤에서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지난 2003년 3월 이반스포츠에 입사한 박일흠(31) 씨. 대구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박 씨는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한국 선수들의 해외 이적이 빈번해지면서 이적업무를 대행하는 에이전트에 관심을 가졌다. 거래 대상이 '상품'이 아닌 '선수'라는 점만 다를 뿐 무역이라는 점에서 전공과 전문성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박 씨는 현재 경남FC의 김진용, 신병호, 이정래, 정경호 등 6명을 관리하고 있다. 구단과 선수 숙소가 있는 창원과 함안을 다니느라 출장도 자주 다니기 때문에 고달프지만 연예인 못지 않은 선수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점을 주위에서 부러워하고 있다.

"선수들이 소속팀에서 운동하고 생활하는데 불편이 없도록 돕고 있습니다. 관공서 행정업무 대행을 시작으로 경기 분석 및 모니터링까지 선수생활의 전반적인 부분을 관리해 줍니다." 박 씨는 "오는 3월에 치러지는 국제축구연맹(FIFA) 공인 에이전트(FIFA Players' Agent) 자격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항상 꿈꿔왔던 공인 에이전트가 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웃었다.

최낙영(30) 씨는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해외파 출신. "해외에서 한국선수들의 경기를 보면서 한국축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전공인 경제학과 외국어 능력을 살리는 것 뿐이더군요." 최 씨가 내린 결론은 에이전트였다.

최 씨는 지난 2000년 FIFA 사이트를 통해 이반스포츠를 접하고 이영중 대표에게 "에이전트에 관심이 많다. 한 번 만나달라."고 졸랐다. 그 후 대학을 졸업하고 군복무를 마친 뒤 지난해 2월 입사했다.

최 씨는 현재 서울사무소에 근무하면서 서울·성남·수원 등 서울·경기지역 선수들과 해외진출 선수들을 관리하고 있다. 최 씨는 "한국 선수들을 해외로 많이 보내는 것이 국력을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에이전트 자격증을 따는 것보다 좋은 에이전트가 되기 위한 자질을 키우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대현(35) 씨는 이달 이반스포츠에 입사했다. 소 씨는 울산 현대 축구단에서 홍보업무와 선수 매니저업무를 맡다가 에이전트로 '전업'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구단에서 일하면서 선수들이 개인적 사생활 문제와 연봉협상 과정에서 힘들어하는 것을 자주 목격했습니다. 에이전트가 돼서 선수들이 경기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소 씨가 현재 맡고 있는 팀은 울산 현대, 부산 아이파크, 포항 스틸러스 등 3개팀. 소 씨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영화의 영향과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환상으로 에이전트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하지만 에이전트는 인간관계 등에서 힘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고 전했다.

소 씨는 "에이전트 자격시험에 열중하고 있다."면서 "국내 선수와 용병선수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선수들의 에이전트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사진·이상철기자 finder@msnet.co.kr

※스포츠 에이전트란?

스포츠에이전트는 스포츠시장이 거대해지고 수요자와 공급자 간의 이해관계로 인한 다툼이 늘어나면서 1960년대 미국에서 등장한 직업이다. 21세기 유망 직종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선 이미 1980년대부터 스포츠에이전시가 황금알을 낳는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스포츠에이전트는 프로선수가 구단에 입단해 연봉이나 스폰서 계약을 할 때 최고의 이익을 확보해 주기 위해 협상에 나서는 대리인. 주로 입단 및 연봉협상, 스폰서십 유치, 투자 자문과 재산관리, 세무 및 법률 서비스 제공, 부대 수입원 개발 등의 일을 한다. 국내에는 90년대 초반부터 외국인 용병들이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에이전트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도입 초기 국내 선수의 해외 진출은 가물에 콩 나듯 이뤄져 용병 수입 외에는 시장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다. 외국에서 용병을 들여올 때도 기본 프로필과 연봉 액수를 제시하는 수준의 일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무명의 박찬호 선수가 에이전트 스티브 김의 도움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120만 달러의 계약으로 '대박'을 터뜨리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고액 연봉과 명예까지 거머쥔 박 선수의 오늘은 스티브 김의 묵묵한 뒷바라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축구의 경우 모든 공식적인 '선수 및 클럽을 대리하는 행위'는 FIFA가 공인하는 에이전트와만 이뤄져야 한다. 그 외의 인물과 이루어진 행위에 대해서는 아무런 법적 보호장치가 없다. 또 이로 인해 발생한 결과에 대해 FIFA 차원에서 징계할 수도 있다. 따라서 클럽 및 선수는 FIFA 공인 에이전트와 협상해야만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

FIFA 에이전트 자격은 까다롭다. 우선 범법 사유가 없어야 하고, 단체가 아닌 개인만이 면허를 신청할 수 있다. 해당 국가 축구협회와의 면담과 시험을 거친 후 추천을 받아 최종적으로 FIFA의 결정에 따라 면허가 허용된다.

모현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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