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53)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을 세간에서는 '왕의 남자'로 부른다. 참여정부 출범부터 지금까지 줄곧 노무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필하고 있어서다. 대통령직 인수위원-정부혁신지방분권 위원장-청와대 정책실장-교육인적자원부 부총리로 이어진 이력이 그렇다. 대통령의 신임이 그만큼 두텁다는 뜻도 포함돼 있다.
정작 그는 '지방분권주의자'로 불리고 싶어한다. 지방분권이 신념인데다 참여정부의 지방분권 정책에 전반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관여해 왔기 때문이다. 경북 고령 출신으로 옛 대구상고와 영남대를 졸업한 그에게서 참여정부의 지방분권 정책의 현황과 전망에 대해 들어보기 위해 세종로 집무실에서 만났다.
김 위원장은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공공기관 이전 및 혁신도시 건설 ▷기업도시 건설 등 지방분권 정책을 추진하면서 "정말 힘들었다."고 운을 뗏다. 신행정수도특별법이 위헌이라고 결정났고, 다시 행정중심복합도시 특별법을 만들어 시행하는 과정에서 가슴을 많이 태운 모양이었다.
"이 정부가 아니었으면 하기 어려웠어요. 대단한 성과를 냈다고 자평합니다." 그는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등을 '지방분산' 정책의 성과로, 예산의 15%이던 지방교부세를 20%로 늘리고 지방양여금을 균형발전특별회계로 넘긴 것을 '재정분권' 정책의 성과로 꼽았다.
제주특별자치도 출범은 직접 챙긴 탓인지 큰 애착을 갖고 있었다. "매우 잘 한 정책이라 자부합니다. 제주도는 아직도 권한을 더 달라고 합니다만 우리나라 지방분권 정책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제주에서 실험이 성공하면 다른 지역으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그러나 "지방분권을 참여정부의 욕심대로 못한 부분도 있다."고 아쉬움도 토로했다. 자치경찰제와 교육자치제를 완결하고 싶었으나 교육자치제는 절충안이 국회를 통과하는데 그쳤고, 자치경찰제 관련 법안은 국회에 아직 계류 중이라는 것.
청와대가 올 상반기 중 제시할 것으로 알려진 '제 2 지방분권 정책'을 그는 '국가균형발전 패키지 정책'이라고 불렀다. "지금까지 지방분권 정책이 중앙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것에 중점을 뒀다면 '균형발전 패키지 정책'은 지방이 가진 매력을 부각해 사람과 기업이 지방에 몰리도록 하는 것이 초점입니다. 수도권은 규제를 강화하되 지방은 규제를 과감하게 완화하고, 세제 인센티브를 주면 사람과 기업이 지방으로 갈 겁니다." 지방 규제 완화와 세제 인센티브 정책은 과거에도 있었다는 기자의 지적에 그는 "과거 정책은 과감하지 못했다."며 "획기적인 인센티브를 주면 달라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노 대통령이 "수도권에 공장 신증설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겠다."고 언급한 것에 경기도 이천 하이닉스반도체 공장 신증설도 포함되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마 이달 안에 결론이 날 것"이라고 즉답을 피한 뒤 "허용해야 한다는 얘기도 많다. 수도권에 허용않으면 중국 등 국외로 갈 기업은 허용해야 국가는 물론 지방을 위해서도 유익하다."고 여지를 남겼다.
각 지역이 다양한 정치 성향 등으로 참여정부의 지방분권 정책에 대한 우군이 되지 못한 측면도 있지 않느냐는 지적에 그는 "솔직히 좀 더 든든한 우군이 됐으면 했지만 그래도 중요한 우군이었다."고 했다. 지방의 지지가 있었기에 분권 정책이 이만큼이라도 진전이 있었다는 얘기다.
김 위원장은 이어 로스쿨제와 종합부동산세에 대해 설명하며 멀지않은 장래에 지방이 이 제도를 지켜낼 것이라고 낙관했다. "로스쿨제가 도입되면 유리해지는 것은 지방입니다. 경북대, 영남대 등 지방대학에서 많은 법조인을 배출할 수 있게 되는거죠. 지방 의과대학이 많은 의사를 배출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지방에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이 로스쿨 법안에 반대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종합부동산세는 김 위원장이 직접 관여해 만들었다. "강남·분당 등 서울의 고가 주거 지역에서 세금을 거둬 재원이 영세한 지방정부에 주도록 돼 있습니다. 부동산 교부금이죠. 수도권의 주택가격을 안정시키고 지자체 재원을 보전하는 취지에서 도입된 것인데 생각할수록 좋은 정책입니다. 부동산교부금의 교부가 올해부터 시작되는데 지자체별로 몇 십억, 몇 백억 원씩 돌아갑니다. 종부세 도입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지만 결국 지방과 지방출신 국회의원들이 종부세 제도를 지켜낼 것으로 봅니다. 대통령께 그렇게 말씀드린 적도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교육부총리로 취임했다가 조기 낙마한 데 대해 무척 아쉬워했다. "평생교육 훈련체계로 교육에 '패자부활전'을 도입하고 싶었습니다. 부모를 잘 못 만나거나 지방에서 좀 좋지 못한 고교를 나와도 우리사회에서 한번은 부활할 기회를 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산학협동 등을 통해 젊은이들이 너무 어린 나이에 꿈을 잃어버리지 않고 언제나 희망을 갖고 살도록 '키'를 주고 싶었습니다. 저만의 '꿈으로 끝난 꿈', '박제가 돼버린 꿈' 이죠."
참여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가 될 것이란 '소문'을 전하자 특유의 너털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 김 위원장은 "정권이 바뀌어도 지방분권 정책은 계속, 더 강력하게 추진돼야 한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최재왕 서울정치팀장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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