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줌인 줌 아웃) 청소년 수달 보호대

지난 12일 오후 대구시 중구 반월당 지하상가. 쇼핑객으로 북적대는 상가 한가운데에서 4명의 남·녀 고교생들이 대구 신천의 수달을 보호하자며 피켓 캠페인을 벌이고 나섰다. '멸종 위기의 수달을 구하자', '수달과 함께 춤을' 이라고 쓴 피켓 옆에는 수달 캐릭터 탈을 얼굴에 쓴 남학생까지 등장해 행인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들 '수달 보호대'의 정체는 환경부가 조직한 청소년 생물자원보전 홍보대사들. 천영민(달구벌고 2년·17) 양, 권고은(정화고1년·16) 양, 정동규(협성고1년·16) 군과 이지수(충남여고2년·17) 양 등 대구와 대전에서 모인 학생들이다.

학생들은 직접 제작한 수달보호 명함을 일일이 시민들에게 나눠주면서 마이크를 통해 수달보호에 동참해 달라고 목청을 높였다. 명함에는 자신들이 만든 수달 보호 블로그(blog.naver.com/gmlwns1004) 주소가 적혀 있다. 캠페인은 동성로 대구백화점 광장앞으로 자리를 옮겨 2시간가량 더 이어졌다. 이날 나눠준 명함만도 500장. 직접 만든 수달 캐릭터 열쇠고리도 불티나게 나갔다. 수달 보호에 동참하겠다는 시민들의 서명도 받았다.

"저희 같은 청소년들도 생태계 보호에 힘을 보탤 수 있다는 게 무척 뿌듯합니다."

천 양 등은 지난해 11월 보호가 시급한 생물자원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환경부가 전국적으로 공모한 청소년 홍보대사단 100명에 뽑혔다. 또래 학생들이 공부로 바쁜 겨울방학, 이들은 추위도 아랑곳않고 환경보호를 위해 칼바람이 부는 거리로 나선 것이다.

"수달은 강가나 물가에서 사는데 야행성이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아요. 예전에는 도심에도 많이 서식했다는데 도로가 생기고 산이 개발되면서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사람과 자연은 공존해야 하는데…." 직접 만든 수달 탈을 벗은 정 군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학생들은 지난해 11월 홍보대사 발대식을 가진 이후로 블로그를 제작하고, 교내 신문에 수달 보호의 필요성을 알리는 기사를 싣는 등 홍보 활동을 꾸준히 벌여왔다고 했다. 직접 신천 둔치를 찾아가 1인 홍보를 벌이기도 했다.

권 양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수달뿐 아니라 많은 생물자원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거나, 토종이 외래종에 밀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걱정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이른바 '생물주권'이 침탈되고 있다는 것이다. "토종 '백다다기 오이'는 미국에서 피클로 재수입되고 있고요, 관상용으로 인기 높은 '미스김 라일락'이라는 품종도 원래는 우리나라 수종인데 미국에서 역수입되고 있다는 것을 이번 홍보대사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됐습니다." 생물주권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제법 전문가다운 견해를 말한다.

대전에서 온 이 양은 그 동안 블로그를 통해 정보를 주고 받으며 홍보활동을 벌이던 친구들과 직접 만난 것이 반갑다고 했다. 이 양은 "블로그 문을 연지 두 달 남짓됐지만 벌써 조회건수가 1천200여 건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면서 "블로그에 수달 관련 정보를 찾아 올리다보니 저마다 수달 박사가 다 됐다."고 웃었다.

요즘 학생들답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고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도 높다.

대안학교(달구벌고)에 다니는 천 양은 지난해 5월 국가 청소년위원회 운영위원으로 가입해 활동중이다. 매월 한 차례씩 동대구역 인근 '청소년 문화의 집'에서 10여 명의 소속 위원들과 만나 정부에 제안하고 싶은 청소년 관련 정책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고 했다. 또 매주 3일은 교내 방과후 특기적성 시간을 활용해 정신지체 장애아들이 생활하고 있는 복지시설을 방문해 말벗이 돼주거나 식사를 도와주는 등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앞으로 대안학교 교사가 돼 청소년, 환경, 교육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학생들과 다루고 싶다는 게 천 양의 꿈.

천 양은 "약간의 관심과 시간을 기울이면 우리 청소년들도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며 "수달 보호 홍보활동을 하면서 사회야말로 가장 살아있는 교과서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고 뿌듯해했다.

▶생물자원보전 청소년홍보대사는

환경부가 위기에 처한 생물자원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고 청소년들 사이에 생물자원보전에 대한 교육 효과를 높이고자 추진하고 있는 환경 홍보 프로그램이다. 국내 10만여 종에 달하는 생물자원 가운데 매일 1.5종꼴로 사라져가고 있거나, 외래종의 무분별한 유입으로 파괴되는 생태계의 위험성을 청소년부터 바로 알게 하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지난해 11월 홍보대사에 지원한 전국 고등학생 240여 명을 대상으로 자기소개서와 홍보활동 계획서를 심사해 최종 100명을 선발했다. 현재 고라니, 여우, 두루미, 반달곰, 수달, 삵, 족제비 등 밀렵으로 인해 멸종 위기에 처해 있거나 보호 가치가 높은 동·식물 중 20개 주제를 정해 각 조별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블로그를 직접 만들거나 거리 캠페인을 통해 일반 시민들에게 생물자원의 중요성을 알리는 일이 홍보대사들의 주 임무. 이들의 활약상은 환경부 관련 블로그(blog.korea.kr/ntreasure/)에도 상세히 올라와 있다. 환경부 자연자원과는 오는 27일 이들 중 우수 팀을 선발해 시상하는 행사를 가질 계획이다.

최병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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