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라고 해서 비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작은 일에도 쉽게 죄책감을 느끼고 가정의 불안한 기류에도 예민하다.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의 사소한 일에서도 따돌림을 느끼기 십상이다.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일에 서투르다보니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은 고함 소리는 늘 목구멍 속에서만 맴돌 뿐이다.
이런 아이들의 내밀한 정서를 다룬 새 책이 나왔다. 신간 '금이 간 거울'(방미진 글·창비 펴냄)이다. 제법 무거운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판타지의 형식을 빌려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한참 자신의 주위에 관심이 높아지는 초등 고학년 이상에게 권해 볼 만하다.
금이 하나씩 늘어가는 이상한 거울, 자꾸만 나타나는 기다란 머리카락…. 으스스한 소재들을 다루고 있지만 마음을 여는데 서투른 어린이들이 자신과 상대방을 감싸안고 이해하게 되는 모습이 흥미진진하다.
'금이 간 거울'은 5편으로 이루어진 단편집이다. 표제작인 '금이 간 거울'은 생활 동화 치고는 중편에 속한다. 집과 학교에서 받는 상처 때문에 가족과 친구들 속에 자연스럽게 섞이지 못하는 소심한 여자아이가 도벽에 집착하는 심리를 깊이 있게 그리고 있다. 주인공 수현이는 남동생만 예뻐하는 부모님이 밉다. 말 잘하고 똑똑한 동급생과 친해진 단짝이 밉다. 그런 수현이는 허름한 가게에서 손거울을 훔치게 된다. 죄책감은 잠시, 어느새 친구 지갑과 선생님 지갑에도 손을 대고 엄마 지갑에서도 돈을 슬쩍 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손거울에는 보기에도 기분 나쁜 금이 한 줄 두 줄 생기고 훔친 물건이 늘어갈수록 금도 늘어나게 된다. 어떻게 도벽의 굴레에서 빠져나와야 할까, 수현이는 손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도 어느새 금이 늘어나는 환상을 경험하며 괴로워한다.
많은 생활동화들이 남의 것을 훔치는 일은 나쁘다는 교훈적인 얘기를 전하고 있지만, 왜 훔치게 됐을까에 의문을 던지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나쁜 일을 저지르는 아이들 역시 죄의식에 괴로워하고 있으며, 마음 깊숙한 곳에서 '도와달라'고 소리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어른들은 알고 있을까.
소심한 오빠가 애정을 가지고 기르던 닭을 가족들과 함께 몰래 잡아먹은 뒤 죄책감에 시달리는 동생의 이야기를 다룬 '오빠의 닭', 운동회 날 가족들이 올 수 없어 혼자 온 주인공이 아버지를 원망하다가도 이해하고 마는 '삼등짜리 운동회 날', 친구와 다투고 난 뒤 어설프게나마 화해하는 아이들의 심리를 묘사한 '오늘은, 메리 크리스마스' 등 수록된 단편들마다 타인을 이해하며 성장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근거리에서 포착하고 있다.
최병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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