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간이야기 3
조오현
《아득한 옛날의 무슨 전설이나 일화가 아니라 요 근년에 비구니스님들이 모여 공부하는 암자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물론 숲속에 파묻힌 돌담 주춧돌도, 천년 고탑도 비스듬한 그 암자의 마당에 들어서면 물소리가 밟히고 먹뻐꾹 울음소리가 옷자락에 배어드는 심산의 암자이지요. 그 암자의 마당 끝 계류가에는 생남불공(生男佛供) 왔던 아낙네들이 코를 뜯어먹어 콧잔등이 반만큼 떨어져나간, 그래서 웃을 때는 우는 것 같고 정작 울 때는 웃는 것 같은 석불도 있지요. 어떻게 보면 암자가 없었으면 좋을 뻔했던 그 두루적막 속에서 20년을 살았다는 노비구니스님이 그해 늦가을 그 석불 곁에 서서 물에 떠내려가는 자기의 그림자를 붙잡고 있을 때 다람쥐 두 마리가 도토리를 물고 돌담 속으로 뻔질나게 들락거리는 것을 보게 되었지요. "옳거니! 돌담 속에는 도토리가 많겠구나. 묵을 해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먹어야지.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중얼거린 노비구니스님이 돌담을 허물어뜨리고 보니 과연 그 속에서는 도토리가 한 가마는 좋게 나왔지요. 그런데 그 한 가마나 되는 도토리를 몽땅 꺼내어 묵을 해 먹었던 다음날 아침에 보니 그놈의 다람쥐 두 마리가 노비구니스님의 흰고무신을 뜯어먹고 있었답니다. 그 흰고무신을 뜯어먹다가 죽었답니다.》
그랬구나. 도토리묵이 유난히 떫었던 까닭이 다람쥐 때문이었구나. 다람쥐가 먹어야 할 양식을 빼앗아 먹었기 때문이었구나. 천지간에 흰눈 펑펑 내리고 찬바람 쌩쌩 몰아치는 한겨울, 산중에서 다람쥐는 무얼 먹고 살아야 하나. 딤채가 없으니 김장을 담을 수도 없고, 수중에 돈이 없으니 찹쌀떡 메밀묵 사먹을 수도 없으니. 헌데 '두루적막' 속에서 20년 동안 수행한 사람이 어찌 다람쥐家(가) 살림 형편을 헤아리지 못한단 말인가. 하기야 생각 없이 질러대는 "야호소리"에 지리산 반달곰이 도망치다가 떨어져 죽었다는 이야기, 그것도 무슨 '전설이나 일화'가 아니라 '근년에' 일어난 사건이니.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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