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 시조산책-김상옥 作 '樹海(수해)'

樹海(수해)

김상옥

도끼에 닿기만 하면 선 채로 썩어지는 나무

한번 보기만 해도 삽시에 연기로 가라앉는 나무

몇 백 리 지름을 가진 그런 숲 속에 묻히고 있다.

숨을 거두는 향기 속에 멍석만한 꽃이 피고

먹으면 마취되는 아람드리 복숭아 열매

인종은 벌레만 못해, 발도 아예 못 붙인 이 곳.

칠흑의 머리를 푼 수양버들이 달려오고

휘황한 불이 떨어지는 계수나무도 달려와서

九天(구천)에 휘장을 두르고 세상 밖에 노닐고 있다.

인적 끊인 곳. 개발이나 문명 따위는 발도 아예 못 붙인 곳. 시원의 자연이 시원의 자연 그 자체로 온전한 곳. 그런 곳이기에 멍석만한 꽃이 피고, 계수나무에서 휘황한 불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도저한 가락의 흐름이 물길인가 하면 불길입니다. 생태학적 상상력이 숨막히는 은유의 숲을 이룹니다. 그 숲 속의 나무들은 아직 한번도 도끼에 닿은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낯선 눈길이 스치기만 해도 삽시에 연기로 가라앉고 맙니다.

칠흑의 머리를 푼 수양버들이 달려오는 상상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세상 밖에 노닙니다. 구천에 휘장을 두른 안쪽에 뭇 생명이 융성합니다. 그것은 벌거벗은 맨몸의 환희요, 껍질째 싱싱한 날것의 열락입니다. '오래된 미래'입니다.

박기섭(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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