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대장간이다."
일요일인 지난 14일 경북 고령군 고령종합시장에서는 부모 손을 잡은 아이들의 함성이 갑자기 터졌다. 대구에서 왔다는 초교생들이 실제 대장간을 구경하기는 난생 처음이라고 했다. 이들은 낫, 호미 부터 작두, 엿장수 가위까지 쭉 늘어놓은 수십종의 농기구를 만져본 후 화덕에서 꺼낸 벌건 쇠를 두드리는 대장장이 이상철(64)씨의 모습을 보고 마냥 신기해했다.
"디지털 세상에 이런 원시적인(?) 작업을..."이라고 할 아이들도 있겠지만 대장간은 예전부터 가장 인기있는 장소였다. 아이들에게 풀무질(연소 속도를 내게 하는 송풍기)하고, 매질(두드려 쇠를 자르는 과정)하고, 담금질(열처리 과정)하는 장면은 큰 구경거리였다. 더욱이 그 앞에 서있다가 떨어지는 쇳밥을 슬쩍 가져가 엿과 바꿔먹을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고 한다.
▲10년후에도 대장간이 있을까?=이제는 거의 사라져가는 풍경이다. 경북지역에는 대장간이라고 할 만한 곳은 6곳 정도에 불과하다.
영주 대장간의 석노기(53)씨는 "농업이 기계화되고 금속제품이나 중국제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대장간은 '희소성' 때문에 유지될 뿐이지 경쟁력은 없다"고 했다. 낫 하나를 만들려면 화덕에 10번, 호미는 5번 정도 들어가고 나와야 할 정도로 작업 공정이 지루하고 길다고 했다. 수많은 공정을 거친 낫 하나에 도매가로 4, 5천원, 호미 하나에 1, 2천원일 정도로 싸다.
예전에는 면 단위마다 1, 2개씩 있었지만 이제는 몇개 시·군에 한개 꼴이다. 그중 절반은 공장형 대장간이고 나머지는 시장에 자리잡은 작은 대장간이다. 석노기씨 처럼 50대 대장장이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60, 70대였다. 그들이 은퇴할 때쯤이면 이런 장면을 다시는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의성대장간의 최상길(73)씨는 "장날에만 문을 열고 소일거리로 할 뿐"이라면서 "조금 더 하다 그만둘 생각인데 요즘 힘에 부칠 때가 많다"고 했다.
이들은 문화재나 장인에 지정해주길 바라고 있지만 행정당국은 아무런 관심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배우려는 사람도 없어=이들의 작업과정을 지켜보면서 한국사람의 손재주에 다시한번 감탄하게 된다. 벌겋게 단 쇠를 모루에 올려놓고 망치로 두드리는데 처음에는 강하게, 다음에는 약하게 두드려 쉽게 형체를 만들어 냈다. 감각에만 의지해 똑같은 크기와 모양의 농기구를 척척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기계보다 훨씬 정교하고 확실한 듯 했다.
쇠 모양을 만드는 망치질도 어렵지만 쇠의 강도를 내는 담금질(열처리)은 고난도의 기술이다. 상주 대장간의 홍영두(60)씨는 "50년 가까이 했는데도 쇠의 재질에 따라 달라지는 담금질은 여전히 어렵다."고 했다. 부엌칼의 경우 벌겋게 달아있는 쇠의 칼날 부분을 1mm정도만 물에 살짝 살짝 담그면서 담금질을 하는데 웬만한 기술로는 이를 제대로 하기 어렵다고 한다.
기술을 배우기도 어렵지만 배우려는 사람도 거의 없다. 설령 가르쳐 달라고 찾아왔다가도 대부분 몇달을 못견딘다. 여름에는 화덕 때문에 찌는 듯 덥고 겨울에는 쇠의 차가운 느낌에 진저리를 친다고 한다.
현재 활동하는 대장장이들은 10대 초반에 풀무질을 하는 것으로 입문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밥만 제대로 먹을 수 있었어도 대장장이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 정도로 힘들고 지난한 작업이다. 작업과정을 제대로 익히려면 10년 가까이 걸린다. 요즘에는 전동 해머, 프레스 등 기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배우는 시간이 좀 단축될 수 있다고 했다.
요즘에는 기와망치, 끌 같은 특수한 분야에 쓰이는 장비를 10개, 20개씩 한꺼번에 주문하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갑자기 장비가 많이 필요한 것은 아니고 혹 내가 잘못되면 다시는 만들수 없으니까..." 고령대장간의 이상철씨의 얘기다.
글: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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