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를 다녀왔다. 모래사장에 앉아 있다가 먹이를 찾아 날아오르는 하얀 갈매기들의 날갯짓이 아름답다. 순간 그 너머로 보이는, 해운대의 우후죽순같이 들어선 많은 고층아파트들. 그러고 보니 저 새들이 지은 집들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사람들만 집을 거창하게 짓고 산다. 그것도 점점 야단스럽게 짓고 산다.
최근 우리네 삶은 아파트 문제로 많이 팍팍해졌다. 지역에 따라 집값의 오르내림 편차가 심하다. 거품일거야, 하면서도 나도 한때 서울의 집값을 보고 상실감을 느낀 적이 있다. 전 재산을 합해도 서울 강남의 아파트 하나 살 재력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
가끔 아파트모델하우스 구경을 가보면, 어찌 요즘 짓는 아파트는 집이 아니라 호텔이나 궁전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이다. 번쩍번쩍하는 대리석 거실 벽에, 커다란 크기의 타일바닥에, 강화마루에, 대리석 싱크대 선반과 크리스털 조명등….
왠지 따뜻해야 할 집이 차고 휑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큰 평수의 집일수록 더욱 그렇다. 어느 영화에서 본 집 같다. 부엌 공간이 현관에서 가까울 뿐더러 아주 넓어졌다. 그것은 마음에 든다. 가족이 모이는, 바로 거실 옆에 위치해서 누구라도 자유자재로 드나들게 해서 더욱 마음에 든다. 사실 지금 내가 살고 아파트에 불만이 있다면 주방이 안쪽으로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이제 집은 노랫말처럼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피고 새 우는 집 내 집뿐이리'가 아니다. 이제 집은 재테크의 수단이고, 호텔처럼 잠시 머물다 떠나가는 공간이다.
추억이 있고 정이 있는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차가운 돌이나 타일로 꾸며진 하늘 높은 집이 우리의 삶의 형태를 더욱 삭막하게 변형시키고 규정지으려 한다. 편안한 땅에서 떠나게 한다. 기억이 아니라 뭔가 은폐하고 망각하라고 한다.
이제 종래의 종이장판은 보이지 않는다. 안그래도 넓은 공간을 더 확장해서 아늑한 맛이 나지 않는다. 아주 썰렁하기까지 하다. 원래 방의 공간이란 좁아 보여도 가구 등 물건들을 가져다 배치하다 보면 구석도 생기면서 공간이 나오기 마련인데….
집안에 우락부락하게 큰 가구가 과연 필요한가? "그 집에 가면 가구나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 느껴지게 하라."는 말을 들었다. 조선시대 우리 사랑방 가구는 그렇게 검소했듯이 말이다. 그런데 우리네 방들에도 언제부터인지, 어김없이 퀸 사이즈의 침대가 자리하고 있다.
나는 가끔 내 어릴 때 살던 초가집을 떠올려 본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우리집 젊은 일꾼은 채전밭과 거름장이 있는 바깥 마당에 앉아 지붕을 이을 이엉을 엮었다. 그 짚으로 엮는 이엉이 아주 노랗고 포근했다. 해마다 그것으로 새로이 지붕을 덮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문에다 창호지를 다시 바르고 문풍지를 발랐는데, 그 문에는 밖을 살피라고 유리도 화투장만하게 끼우고, 국화꽃이랑 댓잎으로 슬핏 무늬를 넣기도 했다. 한 방에서 적어도 네댓 명씩은 나란히 누워 자며 늘 듣던 옛날이야기를 귀가 닳도록 들었다.
넓은 평수의 아파트가 분양이 잘 되지 않자 최근에는 아파트 업체에서 35평 이하 아파트를 60% 넘게 짓는다고 하니, 다행이다. 좁은 공간이 오히려 가족들의 친밀감을 가져오게 한다. 집은 재테크의 수단이 아니라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 때묻고 정 묻은 공간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왜 도시의 집이란, 아파트뿐인가? 기계적이고 획일적인 아파트가 우리 삶을 단단히 조여오고 있다. 작은 체전밭이 있는 단독주택 마을은 도대체 허용이 되지 않는 것인가?
박정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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