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 '산자연학교'가 있는 풍경

무지개, 물이랑 작은, 새싹, 산자연, 물꼬, 꿈틀자유, 들꽃세상, 꽃피는, 산돌, 자자, 푸른숲, 볍씨, 두레나무, 새벽하늘, 마리, 간디, 또랑……. 참 예쁜 말들. 이 말들은 바로 작은 학교의 이름들이다. 작은 학교들은 저마다의 꿈과 희망을 지니고서 그 꿈과 희망에 어울리는 이름들을 가졌다.

물이랑 산이랑 함께 놀며 소박함을 떳떳이 여기며 살아가기를…… 산과 돌과 어우러진 배움과…… 가뭄에 구렁이처럼 쩍쩍 갈라진 논으로 생명의 물길을 대는, 손과 발의 부지런함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그리하여 꿈이 싹트고…… 영성을 키우고…… 자신을 온전히 바쳐서 새 양식을 만드는 볍씨의 삶을 배우기를……. 타고난 본래의 모습대로 아이들이 자라기를 바라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이름이리라. 아니 상처받았던 어린 시절의 자기 자신에게 돌려주고 싶은 이름일 것이다.

"엄마, 선생님은 우리를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나 봐." 중학교에 다니는 친구 아들이 원산폭격을 시키고 각목으로 아이들을 때리는 교사를 두고 한 말이다. "어머니는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하시나요?" "아버지는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시나요?"

답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역할을 규정함으로써 아이들의 사고를 고착화시킨다. 무엇보다 어머니·아버지가 없는 아이들은 이 문제를 보고 무어라 답해야할까? 할머니·할아버지와 사는 아이들은? 이 질문 자체가 어린 마음에 상처로 가 닿을 것이다.

서울대에 최연소 수석입학과 졸업을 했다는 이가 말하는 '공부 잘하는 비결'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학교가 원하는 답은 다르다.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모범답을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비는 어디서 살까요?"라는 질문에 답이 '공중'이라는 것에 1학년이었던 아이는 어이없다는 듯, 나비가 나무나 풀잎에 앉기도 하고 잠자는데 어떻게 공중에서 산다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교육현장에서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지……. 창의적인 아이들이 눈총을 받고, 교사의 권력이 휘둘러지는 교실, 경쟁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서울대에 가기 위해서 친구를 밟고 올라가라고 속삭이는 학교, 학습능력이 평가의 잣대가 되어 다양성을 꺾어버리는 학교, 지식과 정보 전달에 주력하는 모범답을 가지고 "너는 뭘 몰라, 틀렸어."라고 말하는 교실에서 아이들의 사고는 닫히고, 창의성과 자발성과 자존감은 죽어간다.

대안작은학교는 현재의 아이들 그러니까 행복한 세계를 만들어갈 미래의 어른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화해조정을 받지 못한 학교의 기억이 순간순간 아픔으로 떠올라 우리 안에 울고 있는 아이들, 과거의 아이들을 위로하고 그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 속에서 탄생했다.

자기 자신과의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존재들과 관계를 맺을 줄 알고, 자기분야에서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주위 사람들이나 자기 자신과 건강한 관계를 맺을 줄 알고, 무엇보다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들을 줄 알고 다른 존재의 말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나길, 가치나 환경을 정화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자기 세계를 창조해갈 수 있는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가길 바라며, 지난 10여 년간 대안학교들은 생겨났다.

2007년 현재 대안학교는 전체 숫자에 비하면 0.1%도 안 되지만 100개가 넘게 되었다. 그리고 올 3월이면 우리 지역에도 초등대안학교가 문을 연다. 영천 화북면 오산리에 있는 산자연학교가 바로 그곳이다. 그곳에는 꼬리를 내며 떨어지는 별똥별을 하룻밤에도 일곱이나 볼 수 있고, 낙엽 소복이 쌓인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종일 리어카를 끌고 타고, 바람이 매섭게 찬 날은 언 개울에서 얼음을 지치고, 햇볕 따뜻한 날은 뒷동산 무덤가 언덕 위에서 몸을 구르며 온몸이 검불투성이로 환호를 지르는 풍경들이 살아난다. 눈물나도록 아름다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찬…….

이은주(문화평론가·대구여성회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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