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살롱] 정해방 기획예산처 차관

최근 경제부처에 있는 대구·경북 인맥을 감안하면 정해방(57) 기획예산처 차관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십수 년 동안 쟁쟁하던 경제부처 대구·경북 출신 인사들이 일선에서 한 사람씩 물러나면서 '진짜 실력자만 남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대구·경북 경제 관료의 현주소를 생각하면 정 차관을 '으뜸'으로 꼽는데 주저할 필요가 없다. 그는 국내 예산분야에서 명실상부한 최고 전문가다. 행시 18회로 옛 경제기획원에 발을 디딘 후 재정경제원과 기획예산처에서 예산분야 주요 요직만 섭렵해 '걸어다니는 예산사전'으로 통한다.

정 차관이 예산부서에 몸을 담기 시작한 것은 지난 76년 고시 패스후 영천군청 수습과 교통부 1년 근무 후 경제기획원으로 자리를 옮기면서부터. 국가예산에 정통하게 된 것도 사무관과 서기관 과장시절, 예산업무를 총괄하는 예산정책과와 총괄과에서만 주로 근무했기 때문. "보통 과장, 국장을 한 번씩 하고 끝나는데 총괄과장과 국장만 두 번씩을 했습니다. 예산과 관련해 주위에서 별명을 붙여준 것도 주로 예산을 종합하는 업무를 오래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예산에 정통하다 보니 정 차관에게는 과외의 일도 많았다. 국회에서 예산공부가 필요한 의원들이 정 차관을 '과외선생'으로 모신 것이다. 정 차관이 과외로 '예산수업'을 해 준 국회의원은 지금도 이름을 들으면 알 만한 사람들이다. 이상득 국회부의장을 비롯, 이해찬 전 국무총리, 권노갑, 신순범 전 의원 등이 그들이다. 특히 13대 국회 초반 민자당 정조위원장 시절 정 차관에게 예산수업을 받은 이 부의장은 지금도 "정 차관이 나의 가정교사 였다."며 자주 당시를 회상하곤 한다.

DJ(김대중)정부 들어 지금의 기획예산처가 별도로 독립하면서 정 차관의 역할은 더욱 두드러진다. 외환위기 때 예산정책과장 시절에는 공적자금을 전적으로 재정에 부담시키려는 IMF와 힘든 줄다리기를 벌였다. "구조조정 비용을 전적으로 재정이 부담하도록 하는 출연형식이 아니라 융자형식으로 만드는데 애를 먹었습니다. 담당과장으로 어쨌든 재정의 부담은 최소화해야 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정부가 2004년 처음으로 도입한 톱다운(Top-Down) 예산편성 방식도 도입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톱다운(총액배분자율편성) 예산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예산을 정해주던 기존 방식이 아니라 부처별 예산총액만 정해주면 부처가 자율적으로 그 범위 안에서 예산을 편성하는 방식이다. 2004년 재정기획실장 때는 예산편성의 전제가 되는 중기재정계획을 만들어 국가재정법을 국회에 제출했고 이듬해인 2005년 재정운용실장(예산실장)때는 톱다운 예산 편성의 틀을 정착시켰다. 그는 "늦었지만 작년 9월 법안이 국회를 통과돼 이제부터는 예산편성을 위한 제도적 틀이 마련됐다."고 그 의미를 설명했다.

이외에도 요즘 정 차관이 심혈을 쏟고 있는 것은 공공기관 지배구조 정리문제다. 작년 공공기관 운영법이 통과돼 기관 경영의 책임을 기획예산처가 맡으면서 일이 많아 진 것이다. "요즘은 법 통과 후속조치로 공공기관 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 자율성을 강제하는 시행령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예산관료'라는 점 외에도 정 차관은 형제들 때문에 유명하다. 친형인 정해창 전 법무부 장관, 정해왕 금융연구원장 등 3형제가 모두 경북고와 서울대 동문이다. 경북 '영주의 3재(才)'로 불리는 이경재 전 중소기업은행장, 이명재 전 검찰총장, 이정재 전 금융감독위원장 형제에 빗대 정 차관 형제는 '김천의 3재(才)'로 불린다. 부친이 김천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형제들이 모두 김천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정 차관 자신이 태어난 곳은 6·25 때 외가가 있던 선산이라고 했다.

대구에서 초등학교와 경북중·고를 나와 대구토박이라고 할 수 있는 그는 인터뷰 말미에 고질적인 대구·경북의 '예산로비' 행태에 대해 한마디 했다. "아직도 대구·경북 사람들은 윗선에서만 얘기하면 (예산 배정이)다 되는 줄 아는데 시대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지역 특성 때문에 그런 것 같기는 한데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도 연구소 위치 문제를 놓고 대구·경북이 싸우는 것은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우선 만들어놓고 연구소를 활성화시키는게 더 중요한게 아닙니까?"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상곤기자 leesk@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