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에서 두 번째의 원자폭탄이 투하됐던 일본의 나가사키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우라카미 성당 부근 언덕 길가에 1.5평 남짓한 자그만 다다미 단칸방 목조집이 서 있다. 고급 호텔의 엘리베이터보다 조금 넓을까 말까 한 그 초라해 보이는 단칸방이 패전 후 60년 가까이 전 일본인과 세계 사람들에게 평화와 사랑의 감동과 메시지를 보내주고 있는 '如己堂(여기당)'이다.
그 자신이 의사였으며 아내를 원폭으로 잃은 원폭 피해자이기도 했던 나가이 다카시 박사가 1951년 43세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숨질 때까지 어린 두 자녀와 함께 힘겨운 투병 속에서도 평화와 反核(반핵)을 호소하는 불후의 명작들을 집필하다 묵주를 쥔 채 세상을 떠난 곳이다. 그는 살아생전 그 사방 2m 30cm짜리 단칸방을 '여기당'이라 불렀다. '남을 자기와 같이 (如己) 사랑하라'는 뜻이다.
가톨릭신자였던 그는 원폭으로 숨져간 아내의 뼈만 남은 시신 곁에서 불에 녹다 남은 아내의 묵주를 찾아내고 동네 옆 우라카미 대성당에서는 1만 2천여 신자들 중 8천500여 명이 한순간에 폭사한 원폭의 참상을 보고 겪었다. 그 이후 그는 '전쟁'과 '적'이 없는 평화와 사랑을 전 세계에 호소하며 자기처럼 남을 사랑하는 '如己愛人(여기애인)'을 주창했던 것이다.
그 자신 방사능 피폭으로 병석에 누운 채 失明(실명)해가는 눈으로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글을 쓰는 고통 속에도 10여 편의 저서를 통해 평화와 사랑, 대량 살상무기의 죄악 등을 끊임없이 깨우치려 했던 如己 정신은 세계인의 감동을 이끌어냈다.
헬렌 켈러 여사, 히로히토 당시 일왕 등이 병석의 그를 찾았고 교황 비오 12세의 축복 서한과 나가사키 명예시민증 1호를 받아 국제묘지 매장 권리가 주어지기도 했다. 그의 평화를 기리는 첫 작품 '나가사키의 鐘(종)'은 영화, 연극, 가요로 제작돼 전 세계에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나가사키 교육위원회는 그가 살았던 '여기당' 옆에 지난해 나가이 다카시 기념관을 지어 전 세계 청소년들에게 평화교육의 場(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가 '나가사키의 종' 작품을 발표할 무렵 일본은 헌법 제9조에서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에 기조하여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험 또는 무력의 사용은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를 放棄(방기)한다'고 선언했었다.
그랬던 일본이 아베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헌법 수정을 기도하고 있다. 방위청은 방위성으로 승격시키고 북한의 핵 실험을 빌미로 62년 전 한 성당에서 8천500명의 신자를 죽게 하고 1천600명 초등학교에서 1천200명을 순식간에 잃었던 비극을 어느새 잊고 있는 것이다.
나가이 박사는 그때 이미 60년 후 일본의 재무장의 변심을 병석에서 쓴 '사랑하는 내 아이들아'에서 예견하고 경계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이 헌법은 실행돼야(지켜야) 한다. 실행뿐 아니라 이것을 깨뜨리려고 하는 세력을 막아야 한다. 그러나 핑계는 어떻게든 댈 수 있고, 여론은 어느 쪽으로든 따라오는 법이다. 일본을 둘러싼 국제정세 여하에 따라서는, 일본인 가운데서 헌법을 개정해서 전쟁 포기 조항을 삭제하라고 외치는 무리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주장이 자못 그럴듯한 구실을 붙여서 여론을 일본 재무장 쪽으로 몰고 갈지 모른다. 그때야말로…. 마코토(아들 이름)야, 가야노(딸)야, 설령 너희가 최후의 두 사람으로 남더라도 어떤 비난이나 폭력을 당하더라도 단호하게 '전쟁 절대 반대'를 계속 외쳐대고 끝까지 외쳐주기 바란다. 비겁자라고 멸시를 당하고 배반자라고 두들겨 맞더라도…."
원폭을 겪고 묵주알만 쥔 채 사랑을 말한 보통사람 나가이와 묵주 대신 권력을 쥔 전후세대의 집권자 아베 총리의 평화와 사랑에 대한 철학의 차이일까. 지금 일본과 북핵 정세는 나가이 박사의 예견대로 흘러가고 있다. 그 어느 쪽에도 如己의 마음, 사랑과 평화의 마음은 보이지 않는 채.
金廷吉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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