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은 늘 시계 초침과의 전쟁입니다. 어제 아침에도 새벽녘 꿈자리의 어수선함을 떨치고 일어나니 벌써 7시 30분. 우유 한 잔으로 입을 적시는 둥 마는 둥, 전날 저녁에 벗어놓은 줄무늬 양복 그 구김살까지 그대로 걸치고 아파트 현관문을 나섰지요. '아침 회의 시간에 늦지나 않을까?' 쫓기는 마음으로 엘리베이터 단추를 누르고 발을 동동 구르는데, 쉬익쉬익 쇳소리를 내며 일층에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는 왜 그리도 숨이 가쁘고 느려 터졌는지요.
아파트 수위실을 벗어나 공룡의 뱃속으로 들어가듯 좁고 가파른 계단을 통해 지하주차장으로 급히 내려갔으나 차를 어디쯤 세워두었는지 도대체 생각이 나야 말이지요.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찾아놓고 보니 '이건 또 뭐야' 육중한 승합차가 내 차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겁니다. 그 녀석의 무거운 엉덩이를 겨우 밀어내고 차를 몰아 지상으로 나왔지요. 신호등과 신경전을 벌이며 달려가는데 '에구머니!' 이번에는 연료가 떨어졌음을 알리는 계기판이 빨갛게 눈을 뜨고 '빨리 채워주지 않으면 가다가 아무데서나 그냥 서버릴 거야. 알아서 해.'라며 협박을 해대는 것입니다. 주유소로 핸들을 꺾어 들어가 주유를 끝낸 후 다시 출발하려는데 '이건 또 웬 조화입니까?'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겁니다. 쿨쿨쿨 기관지 가래 끓는 소리를 몇 번 내더니 차는, 단단히 화가 난 짐승처럼 납작 엎드려 꼼짝 않는 겁니다. 종종대던 출근길은 바로 그 주유소 마당에서 여지없이 중단되고 말았지요.
사무실에다 여차여차해서 저차저차할 수밖에 없다고 알리고…집에다 전화를 넣어 보험을 든 회사가 어느 회사인지 확인하고… 또 출동서비스 신고전화 번호를 알아내어 상황과 장소를 설명하고…일단 할 수 있는 조치를 하고 돌아서니, 나 혼자 세상 밖으로 내동댕이쳐진 듯한 허탈감에 이어 묘한 해방감이 전신을 파고들었습니다. 세상 밖에서 유리창 너머로 세상 안을 들여다보듯, 쌩쌩 달려가는 차량과 바삐바삐 걸어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때 묻은 일상의 모서리들이 낯설게 다가왔습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과연 어디인가, 내가 하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시대 밖에서 서성이는 혜안의 철학자라도 되듯 알싸한 자유를 씹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차 수리가 끝났다는 말을 듣는 순간, 혼자 외딴길로 밀려나 있다는 낭패감과 함께, 내가 이렇게 비켜나 있는데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잘도 돌아가는 세상의 야속함에 약이 올라 급하게 차를 몰기 시작했습니다. 필사적으로, 끊어진 출근길을 다시 잇기 위해 사무실을 향해 내달렸습니다.
김동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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