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시비비 코너)판사 석궁 피습사건

현직 부장판사가 자신의 집 앞에서 판결 결과에 불만을 품은 소송당사자로부터 석궁에 맞아 부상을 입는 사법 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게다가 가해자가 대표적인 지성인이라는 대학 교수를 지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미치는 충격은 더욱 크다.

이번 사건은 폭력에 의한 보복이라는 측면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행위지만, 여론은 의외로 여러 갈래다. 그 중에서도 가해자의 억울함에 동조하는 측과 이번 사건을 교육계의 문제 혹은 교육계와 법조계의 갈등 문제로 보는 측이 눈에 띈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사법권 침해라는 일차적 충격 외에 사건의 배경이 되고 동조 여론의 원인이 되는 사법부 불신 문제, 교수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법원의 묵시적 동조 등에 대해서까지도 사고의 폭을 넓혀야 한다.

▨ 개인의 범죄 - 용납될 수 없는 사건

이번 사건의 가해자 김모 씨는 체포 이후 "법문을 무시하는 판사에게 국민의 마지막 권리로써 국민저항권을 활용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 사립대에서 근무하다 본고사 수학 문제의 오류를 지적했다가 재임용에 탈락한 뒤 이에 불복해 10년째 법정투쟁을 해왔다.

많은 신문의 사설이나 칼럼들이 다른 배경보다는 그의 개인적 범죄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제대로 된 직업도 갖지 못한 점 등을 생각하면 억울한 마음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판사에 대한 테러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더구나 단순한 항의 차원을 넘어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흉기를 준비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는 점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신문 사설)

개인의 범죄 원인을 두고 사법 불신 등으로 확대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당연히 따른다. '사회 일각에서 범인에 대한 동정론이 일고, 이번 사건이 사법부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특히 테러가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표출된 결과라는 식으로 한 개인의 범죄를 사회 전체의 현상인 양 일반화시켜 확대해석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시각이다.'(신문 사설)

이러한 주장은 사법 불신을 부추기는 세태에도 책임을 돌린다. '사회가 법원 판결을 시비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오히려 사법부의 독립된 판단에 불법적 수단으로 맞서는 행태와 풍조를 꾸짖고 바로잡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특히 그릇된 사법관행을 개혁한다는 명분에 집착한 나머지 사법부의 본래 권위와 법치의 기본원칙마저 훼손, 사법 불신을 부추기지 않았는지 함께 되돌아봐야 한다.'(신문 사설)

사법부의 독립적 판단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논리적 결과로 현재의 사법 불신이나 개혁 문제에 대해서는 자체적인 노력을 촉구하는 수준에 그친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심판해야 하며 폭력에는 결코 굴복하지 말아야 한다.'며 이렇게 내려진 판결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존중받아야' 하며 이번 사태가 '판결에 승복하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 사법 불신이 원인 - 진척되지 않는 사법 개혁

김 씨 사건이 발생한 후 그를 동정하는 여론이 오히려 높고, 구명운동에 나서고, 재판의 원인이 된 재임용 탈락의 진상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여기에는 법원의 판단에 대한 불신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사법부는 이런 여론을 탓하기에 앞서 일부 시민들이 왜 법원의 판단을 인정하지 않고, 범인 편을 들며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표출하고 있는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강도를 두둔하고 강도 피해자에게 잘못이 있다고 비난하는 것과 같다고 섭섭해 할 게 아니라 사법부 스스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신문 사설)

1990년대 이후 시차를 두고 최근까지 불거지고 있는 비리 의혹이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근원적으로 떨어뜨리고 있는 데 비해 사법개혁은 지지부진한 상황도 여론의 질타를 피하기 힘든 원인이 되고 있다. 현 정부 들어 출범한 사법개혁위원회는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로 이어져 4년 동안 개혁 작업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한 국민의 사법 참여, 공판중심주의, 양형제도의 개선 등으로부터 시민의 권리에 직결된 집단소송제도, 국민소송제도, 징벌적 배상제도의 도입, 법조인 양성을 위한 로스쿨제도 등의 사법제도 개혁 의제들이 정쟁으로 지난해부터 한 발도 못 나가고 묶여 있다.'(신문 칼럼)

이런 상황에서 사법부의 권위를 강화하고 사법부 위협에 엄정 대처하겠다는 것 역시 여론의 지지를 받기 힘들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결론의 사법부의 자기 반성과 뼈를 깎는 개혁 노력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권위라는 것은 스스로 내세운다고 인정되는 것이 아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전관예우 등과 같은 사법부를 불신하는 상징어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어떻게 사법부의 권위를 세우겠다는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대법원장이 변호사 시절 석연치 않은 거액의 수임료를 받고, 현직 판사가 재판과 관련해 뇌물을 수수한 일로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법부가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 스스로 정화하고 개혁하지 못하는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시각이 어떤지 깊이 뉘우치고 대오각성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신문 칼럼)

▨ 교수 대 법관 - 보수적인 권위 집단의 한계

이번 사건은 담당 법관에 대한 직접적인 폭력이라는 외형을 띠고 있지만 교수 사회의 구조적 문제나 교육계와 법조계 사이의 모순 구조라는 내부적 원인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여론이 교수 단체와 학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사건 자체와 무관해 보이지만 전문 분야에 대한 사법부의 비전문성이 불충실한 판결을 낳고, 그 판결이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떼놓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번 사건에 대한 법조계와 교수 사회의 시각 차이를 보면 쉽게 이해된다. 법조계에서는 재판부의 판단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의견이 주류다. 항소심 재판부 주심을 맡은 판사는 법원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을 통해 "편파적으로 심리를 진행했다고 취급되는 데 대해 재판부는 통분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재판부는 수학 문제에 오류가 있었고 오류 지적에 대한 보복으로 김 씨가 재임용에서 탈락했다는 점을 모두 인정했지만 김 씨는 교육자적 자질을 따지는 심리과정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교수 단체에서는 김 교수의 재임용 탈락 이후 10년 이상의 세월 동안 대학이 보여준 부당한 대응과 이를 방치한 교육부, 이 같은 불합리에 눈감아온 사법부를 싸잡아 비판하고 나섰다.

'이번 사건은 교수 재임용제도의 근본적인 문제로부터 출발하였으며, 이를 악용해온 대학의 몰지각한 행태와 이를 알면서도 방치한 교육부에 중대한 책임이 있다. 또한 사법부는 억울하게 해직된 교수들의 인권을 보호하기는커녕 인권탄압에 눈감아왔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신문 칼럼)

재판부가 교육자적 자질을 문제 삼았다는 설명에 대해서도 극히 냉소적이다. '재판부의 논리는 위험하기 이를 데 없다. 학생들에게 점수를 잘 주지 않았던 점, 또는 학생 지도에 살가움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 등이 거론되었던 모양인데, 그런 기준은 너무나 자의적이며, 주관적이다. 게다가 재판부의 이러한 판결은 결정적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 식이라면, 부당한 방식으로 의 이름으로 동료 교수에게 을 저지른 교수들의 교육자적 자질은 어쩔 셈인가?'(신문 칼럼)

이런 사태를 종합해 이번 사건을 권위와 권위의 충돌과 해체로 연결시키는 주장도 보인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권위 집단인 교수 사회와 사법부 사이의 마찰 시작, 교수도 범죄자로 전락할 수 있는 현실적 상황을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조짐'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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