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화(51·여) 씨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여름 학교 부적응 학생을 위한 대안학교(현 '가온학교') 설립을 앞두고서였다. 지난 22일 다시 만난 그는 마침 학생들과 함께 교회로 막 출발하던 참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갑니다. 아이들이 그 곳에서 십자수를 배우는데 마음을 순화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그는 가온학교에서 대표교사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관계기사 본지 18일 6면 보도)
청소년 상담 경력 13년차. 두 자녀를 대학원, 대학까지 뒷바라지한 평범한 주부인 김 씨는 청소년 선도활동에 40대를 모두 바쳤다. 유난히 마디가 굵은 그의 손이 그 동안의 '풍상'을 말해주는 듯했다.
김 씨는 10여 년 전 대구시 교육청에서 상담교사 연수를 받았다. 40대로 접어들면서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음 부임한 곳은 한 공고 야간반이었다. "제 별명이 기차 화통이었어요. 하도 아이들에게 큰소리를 질러 붙은 별명이었어요."
김 씨는 애를 먹였던 학생일수록 더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23번이나 가출을 한 남학생이 있었어요. 퇴학 직전이었는데 학교에 대신 용서를 빌고 사정했어요. 그 아이가 지금 어엿한 사회인이 돼 '고등학교 졸업장이 이렇게 소중한 줄 몰랐다.'며 얼마전 연락이 왔더군요."
가난한 학생을 직접 집에 데려다 밥을 먹이고 공부를 가르치기도 했다. 지금은 태권도 도장 관장이 된 '제자'의 얘기다.
"새벽에 신문배달하고 우리 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오게 했어요. 한글도 제대로 읽고 쓰지 못하길래 초등학교 국어책, 수학책을 펴 놓고 2년 동안 가르쳤지요."
그는 5년 전부터 대구 가정법원에서 '자원보호자'로 일하고 있다. 가벼운 죄를 저지른 아이들과 결연을 맺고 6개월 가량 상담한다. 지금까지 15명이 김 씨의 보살핌을 받았다.
'집에서도 두 손 두 발 든 아이들'이니 김 씨도 아이들에게는 가차없다. 상습적인 가출, 유급과 절도, 원조교제의 늪…. 때로 머리채를 휘어잡고 뺨을 후려치기도 하고 욕을 해가며 야단친다. 새벽에 파출소에 불려다니고, 지방으로 아이를 잡으러 간 적도 여러 번. 이런 험한 몫까지 하는 이유를 "엄마 같은 심정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심하게 혼을 내고 나면 왜 마음이 아프지 않겠어요? 결국에는 아이가 곁에 와서 '잘못했다'고 용서를 빕니다. 둘이서 껴안고 운 적도 많아요."
그는 대구시종합복지관에서 엄마들을 위한 가정상담도 하고 있다. 부모가 바로 서야 아이가 바로 설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학교 선생님들인들 이런 아이들을 만나면 얼마나 화가 나시겠어요? 하지만 한번쯤은 그 아이의 현재 모습만 보지말고 지나온 가정사를 돌아봐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한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최병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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