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속의 오늘-연개소문 사수대첩

"너의 강산이 아무리 넓다 해도 400개주에 불과하다. 내가 단지 일개부대로도 너의 땅을 피바다로 만들 수 있다" 명나라 장편희곡"설인귀해정동백포기"에서 연개소문이 당나라 황제에게 호령하는 장면이다. 사수 대첩은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당을 상대로 한 제2차 고당전에서 나온 전투. 당나라는 백제를 멸망(660년)여세를 몰아 평양성으로 쳐들들어간다. 662년 1월23일 연개소문은 방심하고 있는 사수에서 당시 당나라 좌효위장군 백주자사 옥저도총관 방효태와 그 아들 13명을 포함 전군 10만을 몰살시키다. 당시 소정방이 평양을 포위하고 있었으나 폭설과 사수에서의 대패로 황급히 물러가게 된다. 당고종도 아버지 당태종의 말을 듣지 않고 고구려를 침입한 것을 침입한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그 이전 645년 당태종의 침입에서도 연개소문의 고구려군은 안시성의 혈전으로 당군을 격퇴시키고 당태종을 뒤쫒아 만리장성을 넘어, 북경지역 깊숙이 쳐 들어갔다. 북경시 순의현의 고려영 유적이 아직 남아있다.

700년 고구려의 독자적인 천하관을 지키기위해 당나라의 침입을 막아낸 연개소문은 사수대첩을 통해 역사서에 마지막으로 나온다. 이후 연개소문이 죽기까지 당나라는 감히 고구려를 넘보지 못했다. 연개소문이 얼마나 중국인들을 공포에 떨게 했는가는 아직도 남아 있는 중국의 경극과 희곡을 통해 알수 있다.

▲1968년 미국 정보함 푸에플로호 북한 피랍 ▲1974년 구미 대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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