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07, 네 꿈을 펼쳐라!] ④희진이는 오늘도 달린다

중학교 1학년 소녀인 희진(13·가명)이는 매일 아침 여동생(10)의 식사를 챙겨준 뒤 버스를 타고 학교로 간다. 겨울방학이지만 육상 선수인 희진이는 학교에서 마련하고 있는 동계훈련에 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 희진이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육상을 시작했다. 친구들보다 한 뼘이나 큰 키, 마른 체격을 갖춘 데다 달리기를 유달리 좋아한 희진이의 재능을 육상 지도교사는 한눈에 알아봤다. "체육 선생님의 권유로 시작했는데 이젠 달리기가 마냥 좋아요. 칭찬받는 것도 좋고요." 그냥 좋아서 달렸다는 희진이의 육상 실력은 같은 학년에서는 최강이다. 지난해 10월 열린 대구시 소년체전 육상에서 세단뛰기 1위, 계주 2위의 성적을 냈고, 대구시 서부교육청배 육상대회에서도 세단뛰기 1위를 차지했다.

희진이는 학교에서 인정받는 육상 선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아빠의 간병을 하고 동생을 돌보는 집안의 가장이 된다. 희진이 엄마는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다며 희진이와 동생을 남겨두고 4년 전 자취를 감췄다. 평소 술을 즐겨 마셨던 아빠 역시 7개월 전 간경화로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이런 아빠를 대신해 희진이는 매달 정부에서 주는 보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매달 58만 원이 들어오는데요, 방값 16만 원 내고 세금 내면 별로 안 남아요." 희진이는 복지관에서 주는 반찬으로 식비를 아끼고, 남은 생활비를 쪼개고 쪼개 아빠 간병에 쓰고 있다. 아빠가 입맛이 없을 때는 고사리 손으로 직접 식사를 챙겨 병원으로 가져다 주기도 한다. "아빠가 의료급여 1종이라 병원비가 많이 나오지 않는데도 돈이 모자랄 때가 많아요."

희진이는 또 동생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자신의 뒤를 이어 지난해 육상을 시작한 동생에게변변한 체육복 하나 마련해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동생이 운동화랑 체육복 없다고 할 때마다 너무 미안해요." 희진이는 돈에 여유가 생기면 동생 체육복부터 사줄 작정이다.

희진이는 엄마가 집을 나갔을 때 6세였던 동생을 지금까지 보살피고 있다. "아빤 공사장 일을 마치면 항상 술에 취해서 늦게 들어왔거든요. 지금은 간경화 말기래요." 그래도 희진이는 아빠가 꼭 나을 것이라 믿고 있다. "아빠가 저랑 동생이 연습하는 모습을 꼭 한번 보고 싶다고 했어요. 아빠가 다 나으면 함께 운동장에 와서 멋지게 달리는 모습을 보여 줄 거예요."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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