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근대신문인 "한성순보"가 폐간된 지 14개월 만인 1886년 1월25일 "한성주보"가 발행됐다. 갑신정변의 실패로 수구파의 습격을 받아 불탄 박문국을 새로 짓고 김윤식을 총재, 정헌시를 부총재로 하고 주필은 훗날 친일파인 장박(장석주로 개명)이 맡았다. 일본에 피신하던 개화파들이 한성조약(1885년)의 체결로 다시 활동을 하게 됨으로써 발행이 가능하게 된 것. 일본에서 인쇄공을 포함 인쇄기계와 활자를 새로 들여와 보다 근대적인 신문의 형태를 갖춘다.
한성순보와 달리 주간지로 바꾸고 최초로 국한문을 혼용 서민들이 읽기 쉽도록 했다. 또한 최초의 상업광고를 시도 1886년 2월22일 4호에 독일무역회사 세창양행이 호랑이와 여우 등 동물가죽을 판매하는 광고를 실었다. 신문내용을 보면 관청의 소식은 물론 물가변동과 같은 사회소식과 아울러 외국의 발달된 문명을 보도했다. 개화파의 영향으로 계몽사상을 보도했지만 봉건군주에 충성하는 정부의 관보 역할을 했다. 하지만 누적된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1888년 7월7일 창간 2년 6개월 만에 박문국 폐쇄와 함께 폐간된다. 이후 독립신문이 나올 때까지 8년간 근대신문을 갖지 못한 나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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