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강유정의 영화세상] 데자뷰

제리 브룩 하이머와 토니 스콧, 실상 이 이름은 그 조합만으로도 관객의 기대를 사기에 충분하다.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크림슨 타이드'와 같은 영화를 함께 했던 이 콤비는 실상, 현재 우리가 헐리웃 블록버스터 영화에 기대하는 만족의 폭을 대변한다고도 할 수 있다. '데쟈뷰'라는 제목에 강하게 암시되어 있듯, 이 작품은 '기시감'이라는 일상적 경험에서 시작한다. 기시감의 원인을 시간의 우연한 겹침이나 정신적 현상이 아닌 과학적 원리이자 서사의 모티프로 제공하는 것이다. 4일 6시간 전의 시간과 지금 현재가 겹친다는 상상, '데자뷰'는 사이언스 픽션이라는 익숙한 장르적 문법을 블록 버스터의 문법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작품이다.

배경은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폐허가 되었던 미국의 뉴올리언스 해군 축제를 위해 페리호가 출항하고 심상치 않은 상황인듯 카메라는 하나 하나의 상황을 포착한다. 여자 아이의 인형이 떨어지고, 갓난 아이가 하품을 하며 조는 평온한 출발, 하지만 곧 현장은 아수라장으로 돌변한다. 누군가 페리호에 실은 자동차 안에 폭발물을 장치해놓은 것이다. 이야기는 폭발물 수사전담반에서 파견되어 온 더그 칼린이 정체 불명의 수사팀과 협업을 하면서부터 진전된다. 사건 발생 한 시간 전에 발견된 사체가 바로 이 사건의 비밀을 쥐고 있는 열쇠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4일 6시간 전으로 되돌아간다는 영화적 설정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초끈 이론을 근간으로 해 제법 학술적인 듯 설명되어진다. 대개의 SF 영화가 그렇듯이 물론 초끈 이론은 시간 여행이라는 상상을 가능하게 하는 개연성있는 구실 역할 정도일 뿐이다. 이는 다른 말로 하자면 이 영화가 시간의 중첩이나 꼬임이 가져올 현재의 재앙을 다루는 철학적 영화가 아닌 단순한 오락 영화라는 사실과 상통한다.

어딘가 어설픈 듯 하지만 비쥬얼에서 설득력있는 새로움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말 그대로 눈으로 즐길 수 있는 가상 현실의 재미를 톡톡히 주는 데 성공한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보았던 미래 예언 장면만큼이나 재기발랄한 과거 추적 장면은 가히 이 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 시각적 만족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는 영화가 만들어진 이후 계속해서 제작되어 온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영화가 시간의 예술이라는 점, 편집과 다시 보기가 가능한 매체라는 사실이 '시간여행'과 더 깊은 연관을 낳았을 지도 모른다. 언제든 재구 가능한 과거의 기억, 영원히 퇴색하지 않는 과거의 각인 그것이 바로 사진과 영화의 본질이니 말이다.

아무도 모르고 있던 사이 배의 내부에 침입해 평화로운 일상을 전쟁으로 만드는 테러범, 어떤 의미에서 '데쟈뷰' 역시 9.11 사태를 겪은 미국의 또 다른 반응일지도 모른다. 주목해야 할 부분도 바로 이 점이다. 미국 영화는 9.11이라는 미국 현대사의 상흔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재현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SF와 같은 장르를 통해서 미국은 그 안타까운 '시간'의 확정성을 아프게 반추하고 있는 셈이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되돌려놓고픈 시간의 상처, '데자뷰'는 그 상처의 흔적에 대한 다른 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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