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 한권의 책] 왕비의 이혼/사토 겐이치

15세기 프랑스 국왕 루이 12세와 왕비 잔 드 프랑스의 이혼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법정소설이다. 법정 소설이기는 하지만 이야기는 결혼과 남녀의 애정, 그리고 인간에 대한 애정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프랑수아는 세계적인 지성들이 모이는 카르티에 라탱(라틴어 '거리'라는 의미로 파리의 여러 학원들이 여기에 있었다)에서 촉망받는 인재였다. 그러나 폭군이었던 루이 11세의 비리를 고발했다가 정치 보복을 당한다. 그는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지성의 모범을 전설로 남긴 채 소르본 학계를 떠났고 학생들의 우상으로 남았다.

20여 년 후, 프랑수아는 경험 많은 변호사가 되어 왕비의 이혼 재판을 방청하러 온다. 명목은 출장 연수였다. 그러나 사실은 자신을 파멸시킨 폭군 루이 11세의 딸이자 루이 12세의 아내인 잔 드 프랑스가 국왕으로부터 이혼 소송을 당해 여러 사람 앞에서 조롱받는 장면을 보러 온 것이다.

왕비 잔 드 프랑스는 루이 11세의 딸로, 부왕의 정략에 의해 오를레앙 공작과 결혼한 공주였다. 루이 11세가 죽고 그 뒤를 이을 사람이 없자 오를레앙 공작이 루이 12세로 등극했고, 잔은 왕비의 자리에 올랐다. 루이 12세는 왕좌에 오르자마자 곧바로 결혼 무효소송을 냈다. 잔 드 프랑스와의 결혼은 폭군 루이 11세의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22년 동안의 결혼 생활에도 불구하고 잔 드 프랑스가 이혼소송을 당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이유는 루이 12세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게다가 잔은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저는 절름발이에다 추녀였다. 추녀라는 이유로 이혼소송을 당해 여러 사람 앞에서 재판을 치러야 한다는 건 수치스럽고 모욕적이었다. 잔의 아버지 루이 11세의 폭정 피해를 입었던 프랑수아는 수모를 겪는 왕비의 모습을 지켜보며 어느 정도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재판은 왕비에게 불리하게 진행됐다. 절대 권력을 거머쥔 루이 12세의 적이 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방적인 재판이었다.

왕비의 불행을 즐겼던 프랑수아는 이 무차별적인 공격에 맞서 왕비를 변호하기로 결심한다. 왕비가 폭군 11세의 딸이기에 앞서 새로운 폭군에게 희생 당하는 또 다른 희생자로 보였던 것이다.

프랑수아는 유능한 변호사였다. 그의 개입으로 이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왕비의 승소가 현실화되는 듯 했다. 궁지에 몰린 루이 12세는 다급한 마음에 자신이 증인으로 법정에 출두한다. 국왕의 주장은 두 사람의 재판결과에, 또한 두 사람의 결혼생활에 치명적인 증언이었다.

"한번도 같이 잠자리를 한 적이 없다."

왕비 잔 드 프랑스는 신혼 초에 같이 잠자리를 했다고 증언한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법정에서 처녀성을 확인하자."

물론 프랑수아는 왕비와 개인 면담을 통해 두 부부가 잠자리를 같이했다는 고백을 믿었다. 우여곡절 끝에 재판은 국왕의 승리로 끝난다. 그러나 이것으로 소설은 끝나지 않는다. 왕비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또한 변호사인 프랑수아는 남자로서 드러내 보이기 싫은 결점을 갖고 있다. 그는 성직자로서 공부하던 시절 학자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가정교사로 일한 적이 있고, 그 시절 자신이 가르친 학생의 누이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성직자는 결혼할 수 없었고, 그는 인텔리로서 출세하고 싶었다. 갈등 끝에 그는 미래를 포기하고 제자의 누이와 달아나기로 했지만, 결혼은 완성되지 못했고 프랑스와는 잡혀서 거세됐다.

거세된 남성과 장애와 추녀로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잔. 두 사람은 완벽한 육체, 완전한 결혼만이 사랑이 아님을 깨닫는다. 부족한 육체와 불완전한 육체를 가진 남녀는 불완전하지만 완전한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프랑스와는 남성으로 잃어버렸던 자신감을, 잔은 새로운 인생에 대한 희망을 갖는다.

이 소설은 절대 권력자인 왕과 왕비를 둘러싼 법정소설이다. 그러나 한 꺼풀 벗겨보면 사랑과 결혼, 인간과 인간에 대한 소설이다.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왕비 잔이 보여준 모습은 권력자의 아내이고 싶은 바람이 아니었다. 아버지 루이 11세의 딸이자 국왕 루이 12세의 아내이고 싶은 게 아니라, 한 남자의 아내이고 싶은 잔 드 프랑스의 마음이 애처롭다.

법정 소설이지만, 스릴과 철학, 음모와 공감이 속도감 있게 이어지는 소설이다. 일본 작가가 쓴 소설인데, 분위기는 15세기 프랑스 풍이다. 작가는 프랑스사를 전공했고, 유럽 근세의 절대주의를 공부한 사람이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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