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금이정의 독서일기] 세계화의 덫/ 한스 피터 마르틴. 하랄드 슈만

국가(정부)는 국민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자본과 기업은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하게 해달라고 국가를 압박합니다. 노동자와 농민은 최후의 방어막을 사수해 달라고, 그렇지 않으면 생존이 위태롭다고 국가에 아우성입니다. 기업인도 국민이고 노동자나 농민도 국민입니다. 국가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미 FTA가 발등의 불이 된 현실입니다.

이 책은 이 첨예화된 대립에서 국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기업의 경영합리화 만큼이나 사회적 합리성(민주주의)도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국가의 위상을 똑바로 세우고 경제에 대한 정치의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지요. 그렇지 않으면 자본과 시장의 힘 앞에 국가는 무력하게 무릎을 꿇게 될 것이며, 결국 공룡화 된 다국적기업과 금융투기자본에게 '먹히게' 된다는군요.

이미 세상은 거대 공룡들의 이윤 사냥터입니다. 국제 금융시장의 투기꾼들은 전자통신망으로 경제전쟁의 선봉대가 되어 온 지구를 휩쓸고 다닙니다. 금융자본의 파괴적인 잠재력은 연쇄작용을 통해 순식간에 세계를 파멸시킬 수도 있다고 하지요. 그런데, 누가 저 공룡들을 키웠을까요? 원자폭탄보다 더 무서운 저 '돈기계'들에게 밥을 주는 이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그것을 먼저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날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더 이상 우리 외부의 어떤 형체를 가진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인 것이다."라고 슈나이더란 사람이 말했다지요. 아닌게 아니라 이자, 높은 수익률, 부동산 투기, 증권, 펀드 등 잉여 자금이 스스로 덩치를 키워서 이제 그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괴물'이 되어버렸습니다. 광속도로 움직이는 거대한 '괴물'의 위력은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다지요. 그런데 참 이상하지 뭡니까. 사람의 노동이나 땀이 묻어 있지 않은 '돈'에 이토록 거대한 힘을 부여해도 되는 건지, 왜 아무도 그것은 묻지 않는 걸까요? 저것이야말로 살아있는 인간, 인간노동, 인간적인 모든 가치들을 훼손하게 한 단초일텐데요.

'세계화란 세계시장의 거대한 힘이 범지구적으로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것을 뜻하며, 따라서 각 민족 국가들이 자국의 경제적 주권을 더 이상 행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모든 것을 시장의 힘 아래로 종식시키는 것, 이것이 바로 세계화의 핵심이다.' 그래서 '세계시장에 대한 무분별한 적응은 복지 사회의 기초적 토양으로 기능하는 민주적 사회구조를 필연적으로 파괴할 것이다'. 약육강식의 논리로 작동되는 저 세계화의 높은 파고에 국가는 과연 국민의 생존권을 지켜줄 수 있을까요?

자본과 시장 권력은 이제 일상생활은 물론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까지 지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무서운 속도로 자기증식 하는 저 괴물화 된 '탐욕의 덫' 혹은 '두려움과 경쟁의 덫'에 갇혀버린 건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것이 '덫'임을 자각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겠지요. 이 책은 그 '덫'의 실상을 소상히 그리고 섬뜩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bipasor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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