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은 편 환학정(喚鶴亭)에서 바라보면 무섬마을은 겨울햇살에 비친 기와의 창연한 푸른빛과 새로이 단장한 초가이엉의 은은한 황금빛 사이로 나직한 흰 구름이 피었다 진다.
태백산 끝자락을 배산(背山)삼고 낙동강 지류 내성천을 임수(臨水)로 끌어 '물 위에 핀 연꽃(蓮花浮水)' 형상에 똬리를 튼 전통 반촌(班村)은 한 눈에 보아도 멋진 조화 속이다. 자연지리적인 길지를 최대한 활용한 취락구조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600년대 중반. 반남 박씨 입향조인 박수가 처음 터를 잡고 이 후 증손사위인 선성(예안) 김씨를 불러 들여 살게 하면서 지금까지 두 성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해방 전만 해도 120여 가구가 넘는 부촌이었으나 현재는 40가구 4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그것도 한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65세가 넘는 고령층들이다.
수도교를 건너자마자 맞닥뜨린 해우당(海愚堂'금부도사를 지낸 김낙풍의 고택)은 팔작지붕 본채와 맞배지붕 아래채와 사랑채, 초가지붕의 창고와 정갈한 토석담이 단아한 선비정신을 대변하고 있다.
무섬마을엔 해우당을 비롯해 만죽재(晩竹齊·입향조 박수가 세운 집) 등 총 9점의 고택과 가옥이 경상북도 지정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마을 입구에서 잘 정돈된 고샅길을 따라 들면 전통가옥들을 둘러싼 토석담이 길손을 잡아끈다. 비가 내려도 무너지지 말라고 작은 기와용마루가 얹힌 낮은 담장너머로 발 돋우고 눈을 힐끗거려 봐도 어진 선비의 그림자는 간 데 없다.
다만 가옥의 구조를 통해 당시 엄격했던 남녀유별과 양반과 서민의 생활상의 경계를 보여준다.
무섬마을의 전통 기와가옥은 ㅁ자형으로 경북북부지역의 전형적인 양반집 구조를 띤다. 바깥쪽의 사랑채와 안쪽의 내실은 드나드는 문까지도 엄격히 다르다. 또한 안채를 사랑채보다 높게 지어 햇볕이 들게 짓는 것이 특징이다. 유교적 격식을 거주환경에까지 적용한 사례이다.
밖에서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사랑채의 기둥을 네모 또는 둥글게 세워, 같은 양반이라도 벼슬한 자와 못한 자를 구분하고 있는 것도 이색적이다. 기둥이 둥글면 벼슬한 자가 거처하는 집이다.
무섬마을은 초가집도 타 지역과 다르다. 이 곳 초가삼간의 지붕 양 쪽에는 까치구멍이라는 게 있다. 추운 겨울에 실내에서 취사할 때 환기구 역할을 하는 이 구멍은 태백산을 중심으로 강원도와 경북지역 산간벽촌 초가의 특색이다.
많은 전통가옥들이 있지만 무섬마을처럼 가옥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며 주민들이 사는 곳은 그리 흔치 않았다.
이 곳에서 나서 자랐고 같은 마을 청년과 결혼했던 주민 박필남(85) 할머니는 불쑥 찾아 간 취재진의 부탁으로 전통 부엌에 '불 때기' 시범을 보이며 연방 대처에 나간 아들자랑을 늘어놨다. 불편한 몸으로 춥고 힘든 한옥에 거주하면서도 그저 노모의 마음은 아들에게로 향했다. 풍수지리적인 길지라서 그런지 몰라도 한국전쟁과 천재지변을 겪으면서 유독 이 마을은 큰 피해를 입지 않은 것도 주민들의 자랑 중 하나이다.
마을을 둘러보고 나와 다시 보는 강변 백사장. 저 멀리 외나무다리가 중천을 넘긴 햇살을 받아 기다란 실루엣을 드리운다.
안내를 맡은 무섬마을 보존회 김한세(68) 회장은 "원래 이 마을 외나무다리는 세 개"라고 밝혔다. 농로용과 통학용, 읍내 나들이용이 그것이다. 해마다 수심이 얕아지는 가을에 외나무다리를 놓고 봄에 뜯어냈다. 어차피 장마가 지면 휩쓸려 내려가는 것이 외나무다리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수도교 개통 후 350여년 가까이 마을과 뭍을 이어준 외나무다리의 명맥이 끊기는 것을 아쉽게 여긴 주민들이 외나무다리 복원을 결심했고 2005년엔 무섬외나무다리 축제도 열었다.
김 회장은 "2009년경 전통가옥마을로서 재정비가 완료되면 보다 새로운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무섬마을 가는 길=중앙고속도로 영주IC를 나와 영주시내 방향으로 진행, 한국 폴리텍 6대학을 지나면 오른편에 수도리 전통마을 푯말이 보인다. 이 푯말을 따라 고가도로로 차를 올리면 5번국도와 연결된다. 5번국도를 10여분 달리다가 오른 쪽 적서논공단지 빠지는 나들목을 나와 문수면으로 방향을 잡는다. 이 때부터 '수도리 전통마을'이란 이정표를 따라 가면 무섬마을에 도착한다.
※ 겨울산사의 정취 '부석사'
화엄종찰인 부석사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의 빼어난 아름다움이 있어 더욱 유명한 곳. 절 입구 사하촌에 형성된 상가를 지나 일주문까지 가는 길은 마치 승과 속을 경계 짓는 길처럼 한 길이 뻗어 있다.
일주문을 지나면 언덕 높이 절은 좌우대칭 구조의 가람배치를 지니면서 맨 꼭대기에 무량수전이 자리하고 있다. 세월의 무게를 견딘 듬직함이 두드러진 배흘림기둥과 함께 외관의 세련됨과 장엄한 천장부는 한국 사찰건축 중 최고의 걸작.
무량수전 왼편에는 있는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설화를 지닌 부석(뜬돌)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이다. 미혹한 중생의 의식을 일깨우 듯 바람에 실려 온 청아한 목탁소리와 처마 끝 풍경소리도 겨울산사의 잊을 수 없는 풍경이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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