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공의 1년차의 하루 "죽음의 첫 레지던트 생활..."

새벽 4시30분, 응급실 '콜'(call)이 떨어졌다. 피곤한 몸을 가까스로 침대에 누인 지 두어 시간이나 지났을까? 물 먹은 솜마냥 무겁기만 한 몸을 추스려 응급실로 내달렸다. 복부대동맥이 터진 환자가 실려왔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선 환자.

복부대동맥 파열은 병원에 오기도 전에 숨지거나 병원에 도착해도 제대로 손 한 번 못 써보고 숨이 끊어지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 이번 환자는 의식이 남아있고, 복강쪽으로 파열이 생겨 출혈도 비교적 적었다. 응급의학과 팀이 긴급 수혈을 통해 가까스로 혈압을 올린 뒤 수술 결정을 기다렸다.

통상 환자 상태에 대한 기본검사가 필요하지만 이번은 그마저 기다릴 여유가 없는 긴급상황. 보호자에게 환자 상태를 설명한 뒤 수술 여부를 물었다. 환자가 80대 고령인 탓에 수술을 하더라도 장담을 할 수 없다. 아직 의식이 남아있는 환자를 포기할 수 없었던 보호자는 수술을 결심했다. 새벽 6시부터 시작된 수술은 오전 11시30분이 넘어서야 끝났다. 6천cc가 넘는 피를 쏟았지만 수술은 비교적 성공. 응급 환자가 적었던 탓에 수술을 도울 수 있었다. 아침도 거른 채 점심식사와 함께 잠시 휴식. 오후에 다시 응급실로 달려갔다. 차트를 확인하고 환자들에게 응급처방을 내렸다.

저녁 늦게 급성맹장염, 비장출혈 환자들이 밀려들었다. 수술이 끝난 시간은 새벽 1시. 회복실로 옮긴 환자 상태를 체크한 뒤 새벽 2시가 넘어 당직실을 찾았다. 1시간 30분쯤 눈을 붙였을까? 다시 응급실 콜이 날아왔다.

경북대병원 외과 레지던트 1년차 박수연(27)씨. '죽음의 레지던트 1년차 생활'도 이제 3월이면 끝이다. 병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경북대병원의 경우, 레지던트가 돼야 환자에게 처방을 내릴 수 있는 '오더권'이 생긴다. 권한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만큼 힘겨워지는 것이다. 새벽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는 강행군. 체력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한계 상황에 부딪힐 때도 많다.

"매일 그렇게 바쁘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중간중간에 쉬기도 하고, 책도 보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으려고 애쓰죠." 이틀간 밀착 취재하며 수술실, 응급실, 레지던트 당직실 곳곳에서 그를 만났지만 단 한번도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눈코 뜰새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그는 그나마 어제, 오늘은 응급환자가 적었던 편이라며 환하게 웃어보기도 했다.

외과 여의사. 요즘이면 직업 앞에 남녀를 구분하는 수식어를 붙인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남녀차별로 보이지만 20년 전만 해도 특히 외과는 '금녀'(禁女)의 영역이었다. 실제로 20년 전 경북대병원에선 인턴 여의사가 외과 레지던트에 지원한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었다. 비상이 걸린 레지던트 선배들은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지금보면 궁색하기 짝이 없는 핑계를 이유삼아 설득과 회유를 한 끝에 결국 다른 과를 지원하도록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무슨 외과에 여자야?'라는 의식이 팽배했던 때. 하지만 세상은 바뀌었다. 현재 경북대병원 외과 레지던트 20여명 중 9명이 여의사다. 얼마 전 외과 회식자리에서 벌어진 에피소드 한 토막. 한 교수가 최근 유행하는 우스갯소리를 하기 앞서 "여의사들도 있는 자리에서 좀 뭣한 얘기지만…."이라며 운을 떼자, 곧바로 레지던트 4년차 여의사가 이렇게 말했다고. "교수님! 여기에는 외과 의사들만 있습니다." 그 교수는 크게 웃으며 기분 좋게 '잘못'을 사과했다고.

외과 여의사, 아니 외과 의사 박수현씨에게 굳이 외과를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생명을 다루니까요. 다른 분야도 중요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저는 수술실에서 생명을 건 사투를 벌이는 외과가 좋아요. 그게 의사의 길을 선택한 이유이구요."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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