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자와 함께)맏아들 권혁주 씨 56년 '통한의 세월'

한국전 당시 미군 총탄에 맞아 숨진 아버지…"진실만큼 꼭 밝혀주세요"

"해마다 이맘때면 가슴이 찢어집니다. 벌써 56년입니다."

1951년 1월 26일 한국전쟁 때 대구에 주둔하던 한 미군 병사가 쏜 총탄에 경북 달성군 제 2대 국회의원이던 아버지(권오훈·당시 39세)를 여의고 지난 56년간 통한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맏아들 혁주(71) 씨.

"명덕네거리 주변이었습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한 가정집에서 부녀자 비명 소리를 들은 아버지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미군 병사들은 부녀자를 희롱하던 중이었고, 이를 말리던 아버지는 한 미군 병사가 쏜 총에 옆구리를 관통 당해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당시 신익희 국회의장과 대구시장, 경북도지사의 친필 조문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는 권 씨는 "그러나 정부는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을 속시원히 밝히지 않았다."며 "유일한 증거물이었던 피투성이 옷을 가져 간 미 8군은 56년이 지나도록 수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뒤늦게 아버지의 생전 업적과 억울한 죽음을 밝혀내는 일에 뛰어들었지만 미국, 한국정부는 끝내 권 씨를 외면했다. "지난 1964년엔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한 정확한 조사 결과와 피해 보상을 미 국무성과 미 8군에 요청했습니다. 당시 우리 국회로부터 '아버지가 미군 병사에 의해 살해됐다.'는 사실증명서까지 받아 첨부했지만 미 8군은 그 때 증거자료가 모두 없어졌다고 통보해 왔을 뿐입니다."

권 씨 아버지는 정부의 독립운동가 선정에서조차 제외됐다. 생전 모든 재산을 일제 시대 상해임시정부의 광복군 비밀 자금으로 댔지만 '증거'가 없다는게 그 이유. 가족들은 대전 국가기록원까지 찾아가 아버지의 독립 운동 기록을 찾았지만 관련 서류가 하나도 없었고, 독립 운동을 증언해 줄 아버지의 지인들도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 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았던 권 씨 가족에게 실낱같은 희망이 찾아왔다. 은폐되고 왜곡된 과거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정부가 '과거사 진상규명조사위원회'를 발족한 것이다.

지난해 말 대구 동구청에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한 진상규명 신청서를 접수한 권 씨는 "이름 모를 미군 병사의 만행과 이를 덮어 둔 미국, 한국 정부 때문에 지난 56년간을 고통과 분노 속에서 살아왔다."며 "제발 올해 만큼은 과거의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눈물지었다.

이상준기자 all4you @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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