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다. 그래서인지 유독 아버지의 막내딸 사랑이 각별하셨다. 초등학교 입학식날 내 손을 잡고 가셨던 분도 아버지이시고, 아침마다 내 긴 머리를 양갈래로 땋아서 묶어주신 분도 아버지이시다. 다른 형제들과 달리 학부형 모임 때도 어머니 대신 아버지께서 학교에 오셨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께서 일일교사로 초대되셨다. 아버지의 고향은 황해도 사리원, 고등학교 때 월남하시면서 가족들과 생이별을 한 아버지는 유독 반공정신이 투철하셨다. 아버지께 주어진 강의 주제도 '반공'이었다. 그날 아버지께서는 어린 우리들에게 재밋는 사례까지 들어가면서 특유의 황해도 사투리로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갑자기 짝꿍이 내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너거 아버지 빨갱이었나?" 나는 책상에 엎드려 징징 울었다. 박수속에 강의를 마친 아버지는 내 마음도 모르고 "윤희랑 잘 지내야 한다"며 아이들에게 다짐이라도 받으시려는 듯 눈을 일일이 맞추어 가면서 미리 준비해 간 사탕과 과자를 나누어 주셨다.
시간이 흘러 내가 중학교에 들어갈 때 아버지에게 새로운 고민이 생기셨다. 갑자기 무거워진 책가방과 두 정거장이나 되는 학교거리가 걱정이셨다. 결국 아버지의 출퇴근 시간에 맞추어 등하교를 하기로 했다. 아버지의 출근시간에 등교하고 퇴근하실 때 교문에서 만나 하교를 했다.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이 돌아가고 혼자 남은 나는 별 수없이 학교 도서관에서 놀았다. 내 눈높이와 상관없는 고전을 읽다가 졸고, 하이틴 로맨스 소설을 읽으면서 가슴 콩닥거리고, 주니어 잡지 연재 만화를 보면서 눈이 발개지도록 울곤 했다.
다음날, 나의 마음을 달뜨게 했던 줄거리를 친구들에게 해주면서 그들의 반짝거리는 눈을 바라본다거나, 하교
길에 아버지께 그날 읽은 책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나의 재잘거림으로 분위기가 좋아지면 평소에 갖고 싶던 것들을 살짝 이야기했다.
언젠가는 책에서 보았던 귀여운 치와와를 선물받기도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출퇴근 시간에 맞추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아버지와의 등하교는 1학년을 마치면서 끝이 났다.
어린 나에게 많은 꿈을 키워주셨던 아버지께서 며칠전 고인이 되셨다. 잊고 있던 기억들이 오늘 너무나 그립고 간절하다. 영정사진 속의 아버지는 지금도 웃고 계신다. 내 손을 꼭 쥐고 다니시던 온기가 그리워 막내딸은 이렇게 울고 있는데....
나윤희(홍익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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