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요즘의 날씨는 겨울답지 않게 매섭지가 않다. 지구 온난화 현상이라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에서 길을 가다가 밝은 햇살이 간간이 부는 바람과 함께 담벼락을 비출 때 인도를 점유하고 있는 한 무리의 군중들이 빙 둘러 있었다. 제각기 알량하게 한 마디씩 던지면서 킥킥거리고 있었다. "음, 아니야 아니지, 아니고 말고" 짙은 눈썹에 반백의 머리칼을 날리며 구레나룻 수염이 더욱더 인상적인 초로의 사내가 누렇게 탈색된 신문지를 깔고 앉아서 화판에다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 그의 눈은 움푹 들어가 있었고 나이에 걸맞게 늙어 있었다. 묘한 감정이 든 나는 그의 화판을 들여다보았다. 선과 선의 연결이 계속되어 있었다. 그것은 하나에서 열까지 선이었다. 하늘과 땅 사이의 선. 바닷가의 갈매기가 어지럽게 날아다니며 그어 놓은 선. 겨울날 전깃줄에 앉아 있다가 겨울다운 매서운 바람이 불 때 날아가는 참새가 찍 싸고 가는 오줌이 떨어지는 선이었다. 나는 점점 흥미를 가지고 보았다. 그의 손놀림은 일순 떨리면서 선만은 곧게 뻗어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는 한 곳을 비워두고 있었다. 겨드랑이에 원서를 몇 권 낀 학생이 비워 둔 곳을 지적하였다. "선이란 그런 거야. 한쪽은 비어 있는 거지. 아니 텅텅 비도록 내버려 두어야지. 각박한 세상에 이곳마저 채워두면 숨통이 막혀 뒈져 버리는 거야." "여보쇼, 환쟁이 당신 이 그림 파는 거요. 팔 것이라면 값이라도 얘기해 보시오. 어디 얼만큼의 값이 나가는 거요." 머리칼에서 포마드냄새가 나는 중년의 사내가 이죽거리며 물었다. 역겨움이 올라오는 것을 참으며 나는 그를 한번 힐끗 쳐다보았다. "미라는 것은 값으로 칠 수가 없지. 죽어있는 것을 미라고 할 수는 절대 없는 거야. 미를 사고팔 때 그 미는 이미 죽어 있는 거지." "당신의 선은 살아있는 선이요? 생기 있고 힘 있는 젊음이 넘치는 선이요? 완숙한 경지에 든 중년의 선이요? 아니면 말라비틀어진 노망기 있는 선이요?" 그와의 대화를 터 보려고 나는 입술을 나불거렸다. "나의 선은 살아있어 젊고 생기가 넘쳐 있어." 얼떨떨하였다. 둔기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넋두리를 읊는 듯한 그의 입술은 힘이 없었지만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뼈가 있는 듯하였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배운다. 부족한 사람에게는 부족함을 넘치는 사람에게는 넘침을 배운다.
둘
매월 세 번째 목요일 늦은 7시 교보문고 3층 아트홀에는 "사람을 아름답게, 시 낭송은 감동적이게, 시노래는 흥겹게" 이 슬로건으로 시 문화 운동의 중심을 향한 21세기 시의 르네상스를 꿈꾸며 격조 높은 시 문화 운동에 깃발을 세우며 시 문화 운동을 전개하는 작지만 내실 있는 송앤포엠이 있다. 대중의 가슴을 열고 밝고 행복한 사회로 가는 징검다리가 되고자 한다.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은 졸아 빠진 라면 국물에 소주 잔을 기울이며 지하방에서 곡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거기에 지금까지 뭐 하나 딱히 도와준 것도 없지만 돈 안 되는 시노래를 만들고 있는 젊은 작곡가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시집 떠난 시의 낭송, 시노래, 오카리나 시 연주, 동요의 깊은맛을 느끼며 문화를 향수할 수 있다는 것이 밥은 되지 않지만 자신을 윤택하게 하고 영혼을 살찌우게 하지 않을까? 무료 봉사로 사회를 보는 방송DJ와 시 낭송가와 오카리나 연주자와 연극인과 가수들이 있어 이 단체는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봉사도 하고 있다. 노을이 그리움으로 피는 이유가, 그리고 소리에 젖는 이유가 시인의 마을에 있었던 그리움으로 여전히 남아 있는 고향의 소리였으면, 고향의 빛이었으면, 어쩌면 도회에서 느끼는 화려한 빛깔이 아니라 화려한 소리가 아니라 시인의 가슴에 늘 지워지지 않는 지금도 여전히 피고 지면서 소리가 되고 있는 고향의 소리가 있었던 고향의 빛깔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초대시인을 모시고 시에 대한 얘기를 듣다 보면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그 가운데 들어가 있는 듯 느끼게 될 뿐만 아니라 시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세상의 모든 것과 친구가 되려는 분들, 우리 모두 손잡고 여러분의 가슴을 촉촉이 적셔주는 시노래가 가득한 아름다운 세상, 시 낭송과 시극이 있어 살 떨리고, 감미로운 오카리나 연주에 닭살 돋는 전율을 맛보며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 보지 않을래요. 다음을 위한 재충전의 기회를 만들어 가보지 않을래요? 언제나 여러분을 환영한답니다.
홍승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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