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텅텅, 부릉 부릉 부르릉~."
지난 20일 오후 팔공산 동화사집단지구. 미국의 대형 오토바이인 할리 데이비슨(이하 할리)의 엔진소리가 장중하게 팔공산의 정적을 깨뜨리면서 울려퍼졌다. 주말 등산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린다.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지만 부러워하는 사람도 많다.
할리 오토바이 소유자 동호회인 호그(H.O.G.·Harley Owners Club) 경북지부 회원 8명이 이날 팔공산 투어링에 나선 것이다. 커다란 할리 오토바이를 세운 동호인들이 헬멧을 벗자 놀랍게도 대부분 40, 50대였다.
검은 가죽 재킷과 카우보이 부츠, 카우보이의 권총 등으로 치장한 동호인들은 미국 서부개척 시대의 카우보이를 연상케 했다. 이들에게 오토바이는 거친 서부를 질주하는 말과 닮았다.
이들 동호인들은 월 1회 왕복 300km 정도의 질주를 즐긴다. 동해안 7번 국도와 청도 운문사 등지가 이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오토바이 대리점을 운영하는 이이호(50·포항시 북구 용흥동) 씨는 30년 경력의 오토바이 마니아다. 그는 5년전부터 할리 오토바이를 타고 있다. 이 씨는 "나이가 있기 때문에 스피드를 즐기기보다는 여유를 만끽하기 위해 할리 오토바이를 탄다."면서 "오토바이가 무겁기 때문에 운동도 된다."고 말했다.
이상모(43·포항시 남구 이동) 씨는 고교 영어교사이다. 그는 지난해 9월 꿈에 그리던 할리 오토바이를 구입했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을 찾다가 모터사이클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할리 오토바이를 사기 위해 5년간 저축을 했습니다. 담배도 끊고 절주하면서 돈을 모았죠. 무엇보다 집사람의 이해가 큰 힘이 됐습니다."
이 씨는 "매일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하고 싶지만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이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까봐 자제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 씨의 부인 이미영(42) 씨도 이제는 오토바이 마니아가 됐다. 이 씨는 "오토바이가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남편과 타보니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면서 "부부와 함께 타고 취미를 공유하기 때문에 금슬도 더 좋아지는 것 같다."고 웃었다.
자영업자인 편해주(47·포항시 북구 학잠동) 씨는 2년간의 적금과 은행 대출로 오토바이를 마련했다. 5년 전 오토바이를 시작했다는 그는 "출퇴근할 때 오토바이매장에서 본 오토바이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면서 "죽을 때까지 모터사이클을 즐기겠다."고 했다.
이날 투어링에 참석한 회원 중 막내는 이동영(35·포항시 북구 용흥동)·김영진(32·여) 씨 부부. 이 씨는 "40·50대 선배들을 만나면 인생을 배울 수 있어 좋다."면서 "나이가 40, 50이 넘더라도 모터사이클을 즐기겠다."고 말했다. 김 씨는 "직장생활 때문에 남편을 잘 보기가 힘들지만 같은 취미를 공유하기 때문에 너무 즐겁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들 동호인들의 거침없는 질주를 가로막는 장애물도 많다. 주택가에서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면 차량 경보기가 울릴 만큼 소리와 진동이 큰 데다 '나이 든 폭주족'이라는 비판을 종종 듣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회원들은 80km 정도로 달리는 데다 헬멧 등 보호장구를 착용하지 않는다면 투어링에 참석하지 못하게 한다고 강조했다. 또 대형 오토바이는 자동차 사이로 곡예 운전을 할 수도 없다. 할리 오토바이는 주로 레저용이고 장거리 투어용이기 때문에 평일 시내에선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고 했다.
이 모임의 총무인 김영환(42·영덕군 강구면 오포리) 씨는 "할리 동호인들은 스피드보다 소리를 즐기기 때문에 속력도 그리 많이 내지 않는다."면서 "투어링을 할 때 경험많은 라이더가 앞장서고 후방 라이더가 안전을 도와주면서 교통질서도 잘 지킨다."고 말했다.
▶할리 데이비슨은?
할리 데이비슨 코리아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 있는 할리 오토바이는 3천여 대다. 할리 오토바이는 883cc부터 최고 1천690cc까지의 헤비급 모터사이클이다. 가격은 1천만 원대부터 5천만 원선. 한국인들이 주로 타는 1천450cc는 3천만 원선이다. 할리 오토바이는 2000년 이후 한국에서 매년 20% 이상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다.
대구경북지역에서는 할리 오토바이가 300대 정도 있으며, 동호회에 가입한 인원은 35명 정도다. 동호인 수도 2000년 이후 매년 증가하는 추세고 직업도 다양해지고 있다.
할리 오토바이는 일본 오토바이에 밀려 파산 직전까지 갔지만 오히려 '고가격·저성능' 마케팅 전략으로 회생했다. 혼다 등 일본의 오토바이가 작고 엔진소리도 조용하고 부드러운 반면 할리 오토바이는 크고 강하고 엔진소리도 시끄럽지만 장중한 멋이 있다.
▶왜 부부동호인 많을까?
할리 오토바이는 부부가 즐기기에 아주 좋다. 할리 오토바이는 무게가 500kg에 달하기 때문에 여성이 운전하기에는 힘들다. 하지만 뒷자리가 아늑한 만큼 부부와 함께 달리기에 그만이다. 할리 오토바이에서 동승자는 '탠덤'이라고 부른다. 운전자와 동승자의 호흡도 중요하다. 코너링을 돌 때 동승자와의 호흡이 맞지 않으면 넘어지기 십상이다. 할리 동호회의 회원들 대부분이 부부가 함께 투어링을 즐긴다고 한다.
이정기(53) 동호회장은 "부부가 호흡을 맞춰 함께 타기 때문에 금슬도 더 좋아진다."고 말했다.
글·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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