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匠人'의 숨결 이어가는 아름다운 풍경 2題

대기업에서 대리로 일하며 능력을 인정받아온 손자가 어느날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할아버지의 양복점을 잇겠다고 선언한다. 어머니 등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손자는 양복점을 행복하게 꾸려나간다. 얼마 전 방영이 끝난 일일연속극의 한 장면이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한복과 시계수리 등 사양산업이라고 불리는 직종에서 가업을 잇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가업을 잇고, 아들이 아버지의 가업을 계승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소개한다.

▶우리는 한복 가족

지난 24일 대구시 중구 대봉동 '김복연한복연구원'. 시어머니 김복연(72) 씨와 큰며느리 황금순(45) 씨가 다정하게 한복을 짓고 있었다.

시어머니 김 씨는 50년째 한복 외길을 걷고 있는 한복 명장. 그는 우리나라 전통의복인 한복 부문에서 지난 2002년 처음으로 명장 1호로 선정됐다. 그가 한복 만들기와 인연을 맺은 것은 13세 때였다. 지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 뒷바라지와 동생들을 돌보면서 자연스럽게 바느질을 익히게 됐다.

김 명장은 큰며느리 황 씨가 너무 대견하다고 했다. 그는 "힘든 한복의 가업을 잇고 있는 데다 병든 시아버지 수발도 20여 년 간 했다."면서 "요즘 세상에서 이만한 며느리가 어디 있겠느냐."고 자랑했다.

큰며느리 황 씨는 10년 전부터 시어머니와 함께 한복의 길을 걷고 있다. 황 씨는 15년 전 시어머니가 한복의 대를 이을 것인가 물었을 때는 거절했다고 한다.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이다. 가사도 돌보고 병든 시아버지 수발도 거들어야 했기 때문.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의무감'이 생겼다고 했다. 그는 "시어머니가 힘들게 이룬 일이 사장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면서 "시어머니에 이어 한복의 대를 이어야 되겠다."고 결심했다. 황 씨는 "본격적으로 한복 짓는 것을 시작해보니 일도 재미있고 자신감도 생겼다."면서 "시어머니의 뒤를 이어 명장 칭호도 받고 싶다."고 웃었다. 김 명장은 내년쯤 며느리와 함께 한복 전시회와 패션쇼를 열 생각이다.

또 최근 이들 고부를 기쁘게 하는 일이 생겼다. 어릴 때부터 유달리 한복에 관심을 가졌던 손녀 배수진(15) 양이 가업을 잇겠다고 나선 것. 수진 양은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어머니의 한복 작업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다고 한다. 복주머니를 만드는 등 재능도 할머니를 꼭 닮았다.

김 명장은 "손녀가 할머니와 어머니의 뒤를 이어 한복의 가업을 잇겠다면서 대학도 의상학과에 진학하겠다고 말해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다."면서 "며느리와 손녀가 전통은 그대로 살리면서 현대감각에 맞게 한복을 예쁘게 발전시켜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우리는 시계수리 가족

지난 24일 대구시 달서구 용산동 홈플러스 성서점 지하 2층에 위치한 시계전문점 '스위스'. 이곳은 '3부자 시계수리업소'로 유명하다.

대구에서 유일한 시계수리 명장인 이희영(52) 씨가 좁은 매장 안에서 외눈 돋보기를 끼고 시계수리를 하고 있었고 이 명장의 뒤편에는 장남 윤호(31) 씨가 역시 시계 수리를 하고 있었다.

이 명장은 지난 1972년부터 시계수리를 해오고 있다.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35년 동안 시계수리의 외길을 걸어왔다. 당시 시계 수리업은 인기가 좋았다. 새마을 운동의 영향으로 시계가 필수품이 됐고 고장도 빈번해 일거리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휴대전화, 값싼 전자시계의 등장으로 전 국민의 20~30%밖에 시계를 차지 않는다. 한마디로 사양산업이 된 것.

이 명장은 "적성에 맞아 선택했기 때문에 시계 수리를 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면서 "시계수리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기술만 배워두면 시계수리의 장래는 유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남 윤호 씨는 아버지의 일을 지켜보면서 자랐다. 이 명장은 장남에게 자신의 가업을 잇게 하려고 했지만 윤호 씨는 시계수리가 사양산업이라는 것을 알고 다른 분야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이내 아버지의 가업을 잇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윤호 씨는 "시계수리가 적성에도 맞고 아버지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을 도와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차남 인호 씨도 4년전 전기 회사에 취직했지만 어느날 갑자기 시계수리를 하겠다고 나섰다. 이 명장은 "반대를 했지만 속으로는 대견스러웠다."고 회상했다. 인호 씨는 "형과 아버지의 일을 도와주고 싶었고 직장생활보다는 가업을 잇는 것이 더 적성에 맞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차남 인호 씨는 지난 2005년 12월 구미에서 시계수리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 명장은 "장남은 뛰어난 기술이 있지만 차남은 사업수완이 좋아 매장 관리를 맡겼다."고 말했다. 차남 인호 씨의 빈자리는 딸 미경(28) 씨가 대신하고 있다. 미경 씨는 "이 길로 계속 나갈 생각은 없지만 아버지를 도와드리고 있다."고 했다.

이 명장은 "온가족이 함께 모여서 판매에서부터 수리까지 모두 할 수 있는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 꿈"이라면서 "손자들이 할아버지의 가업을 잇겠다고 한다면 당연히 하라고 하겠다."고 웃었다.

글·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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