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혼자라서 좋다, 둘도 괜찮다 '10평의 행복'

공무원시험을 준비중인 이순우(23·여) 씨는 며칠 전 대구시 중구 삼덕동의 한 원룸에 입주했다. 혼자만의 독립된 생활이 꿈이었던 그녀는 8평짜리 공간을 갖게된 것이 너무 즐겁다. 우리 시대의 새로운 주거문화의 하나로 자리잡은 '원룸족'이 된 것이다. "엄마가 해주던 밥이 너무 먹고 싶어요." 끼니 때마다 밥걱정을 하긴 하지만 마음껏 친구들과 술을 마실 수도 있고 누구로부터도 간섭받지 않는 생활에 해방감을 느낀다. "그저께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다음날 학원에 가지 못했어요. '시체놀이'했어요."

사실 이 씨는 다니고 있는 학원이 너무 멀다는 이유로 독립을 했지만 언니의 간섭과 감시(?)로부터 벗어난 것이 가장 좋다.

박영춘(26) 씨도 대구시내에 집이 있지만 독립하고 싶어서 원룸에 산다. 가전제품과 침구가 모두 갖춰진 '풀옵션방'에 입주, 불편한 점이 없다. 집에 들어가서는 심심하기 때문에 거의 매일 퇴근 후 여자친구와 만나 데이트를 즐긴후 밤늦게 들어간다. "경제적으로는 조금 부담되긴 하지만 내 생활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아요." 늦게 귀가하거나 외박을 해도 부모님의 잔소리를 듣지않는 게 최대수확이다.

원룸생활이 즐겁기만 할까. 권성열(28) 씨는 외로움을 호소한다. 고향인 경북 영양을 떠나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권 씨는 4년째로 접어든 원룸생활이 힘들다. "몸이라도 아플 때면 약사줄 사람도 없는게 너무 쓸쓸해요."

수성구의 한 유흥업소 종업원인 김모(31·여) 씨는 원룸생활에 익숙하다. 그녀의 집은 항상 강아지가 지킨다. 강아지나 고양이 등 애완동물과 함께 사는 여성입주자들이 많다는 것도 원룸족의 특징 중 하나다. 애완동물 때문에 임대주와 마찰을 빚기도 한다.

대구케이블방송에 다니는 김광수(32) 씨는 2월에 결혼, 지금 살고있는 남구 대명동의 '투룸'빌라를 신혼집으로 삼을 작정이다. "전에 아파트에 살았는데 원룸도 (아파트생활과) 별반 차이가 없어요."

차이는 있다. 아파트에 비해 관리비부담이 거의 없다. 그래선가 아파트를 버리고 원룸에 입주하는 신혼부부들이 늘어나고 있다. 유흥업소 종사자와 대학생 및 미혼직장인 등이 전형적인 원룸족이었다면 신혼부부들과 일시적으로 안정적인 주거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저소득층까지 원룸족 대열에 가세했다.

다음카페 '대구원룸사랑'(http://cafe.daum.net/oneroomok)의 권순만 운영실장(34)은 "경기가 나쁠 때 오히려 원룸임대가 활발해집니다. 아파트전세금을 빼서 사업자금을 하거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아파트 전세에서 원룸이나 투룸월세로 내려오는 사람들이 적지않거든요." 권 실장도 지난해 결혼한 이상은(29) 씨와 원룸에 거주한다. "아파트가 편리하긴 하겠지만 굳이 아파트를 고집할 필요는 없어요. 봄 결혼시즌을 앞두고 지금부터 원룸을 구하려는 신혼부부들이 많아졌어요." 하긴 신혼부부들에게 신축원룸 입주는 부담스런 아파트관리비를 절약, 재테크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집에만 틀어박혀있으면서 외부세계와의 접촉을 꺼리는 것이 원룸족의 특성이다. 이런 생활형태가 누에고치와 같다며 코쿤(Cocoon)족으로도 불린다. 컴퓨터와 인터넷은 필수다. 며칠씩 방에서 게임을 하거나 바깥활동을 삼가는 '디지털코쿤족'도 늘어나고 있다. 자장면과 피자 등 배달음식의 주소비층도 원룸족이다. 그러나 요즘 원룸에 산다고 다 '코쿤족'이라고 생각하면 천만에다. 활동적인 사람도 많다.

남구 대명동의 한 신축원룸 입주자들은 얼마전 한 입주자의 '사발통문식'의 통지를 받았다. 다음 달 초, 함께 영화를 보고 저녁식사를 하자는 초대였다. "문을 닫으면 각자 간섭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살고있지만 그래도 한 건물에서 함께 살고있는데 최소한의 교류라도 갖자는 뜻에서 시작했어요."

이제 원룸과 오피스텔도 우리시대 주거문화의 하나로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다.

◇ 대구는 '원룸천국'

대구는 다른 도시에 비해 원룸문화가 발달돼있다. 중·남구 등 도심 곳곳의 낡은 주택을 재개발하면서 다세대주택으로 재건축하는 경우가 많다.

대략 대구에는 5천~6천호의 원룸빌라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다음카페 '대구원룸사랑'의 권순만 운영실장은 3년전 직접 오토바이를 타고 대여섯차례 대구전역을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대구의 원룸지도를 작성했다.

대구의 최대원룸밀집지는 남구다. 2천여 호가 산재해있다. 특히 프린스호텔 뒤편이 가장 많다. 한 때 '선수촌'으로 불리기도 했다. 수성구에도 800여 호가 있다. 빌라 한 채마다 대략 8~14세대가 거주하고 있어 4만~7만여 원룸세대가 있는 셈이다.

중구와 북구지역 원룸에는 대학생들이 많이 거주하고 수성구는 직장인 비율이 높다. 원룸형태는 단순한 원룸구조에서부터 3, 4개의 방과 최신 전자제품을 모두 갖추고 임대하는 고급맨션형까지 다양하게 있다.

유흥업소 종업원과 대학생, 직장인, 신혼부부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원룸을 선호하고 있지만 장애인들에게 원룸은 여전히 친숙하지않은 주거지다. 아파트 등 공동주거시설과 달리 원룸 건축 때는 장애인들의 통행을 돕기위한 경사로 설치 등이 의무화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거동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임대사업자들이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이들에게 임대를 꺼리는 것도 한 이유다.

글·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사진·박노익기자 noi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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