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서울에서 대구로 파견 근무를 온 정형주(32·대구 남구 대명동) 씨. 처음에는 빨리 서울로 올라가 부모와 살거나 결혼으로 가정을 꾸릴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싱글족' 생활에 익숙해졌다. 가끔은 떨어져 있는 부모가 그립고, 혼자인 것이 외로울 때도 있지만 이제는 불편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독신생활에 도움을 주는 제품이 다양하게 나오면서 요즘은 나름대로 재미가 붙었다는 것이 정 씨의 얘기다.
'싱글족'을 타깃으로 한 마케팅이 불을 뿜고 있다. 650만 명으로 추산되는 싱글족이 새로운 소비 주역으로 부상함에 따라 이들을 겨냥한 상품이 봇물을 이루고, 업체들의 판촉전이 열기를 더하고 있다.
▶진화하는 '쁘띠상품'.
필요한 양만큼 소량으로 상품을 구매하는 '싱글족'이 많아지면서 기존 제품을 대폭 축소한 '쁘띠(Petit)상품'이 그 반경을 넓혀가고 있다.
롯데백화점 대구점 식품관 올가 매장에선 1인용 수프와 1인용 시리얼이 싱글족들에게 인기다. 많은 양의 기존 제품은 한 번 개봉 후 보관 등이 어려워 버리는 일이 다반사였으나 1인용은 개별로 포장돼 있어 싱글족에겐 제격이란 얘기다. 1인용 뷔페 접시는 밥과 반찬을 같이 담을 수 있고, 설거지도 간편해 인기를 끌고 있다.
동아백화점 쇼핑점 푸드갤러리에선 싱글족을 겨냥해 야채를 비롯한 농수산물을 한두 사람이 먹을 정도의 양만 판매하고 있다. 파인애플 경우 5~7개 조각을 나눠 팩에 담아 팔고 있고 별도의 용기에 키위, 오렌지, 파인애플 등 여러 가지 과일을 조금씩 담은 제품도 나와 있다. 동아백화점 이상민 계장은 "작년부터 소규모 포장 상품을 내놨는데 매출이 20%나 늘어날 정도로 반응이 좋다."고 했다.
편의점 업체인 훼미리마트 경우 2005년 12종으로 출발한 쁘띠상품이 현재 100종을 넘어섰다. GS25도 전체 3천여 상품 중 작년에 출시된 50종을 포함한 200여 개 상품이 쁘띠상품이다.
싱글족들은 또 TV를 따로 장만하지 않고 브라운관에 비해 전자파도 적고 시력보호에도 도움을 주는 수신기가 내장된 17인치급 이상 컴퓨터 모니터를 선호하고 있다. 냉장실과 냉동실 구분이 없는 작은 냉장고, 1㎏ 용량의 미니세탁기, 토스트 겸용 전자레인지, 2, 3인용 밥솥도 싱글족들이 많이 찾는다.
접이식 침대, 소파-침대 겸용인 소파베드도 인기몰이 상품 중 하나. 한 인터넷 업체에서 접이식침대는 전체 침대 판매량의 40%, 소파베드는 전체 소파 판매량의 30%가량을 차지할 정도다. 혼자 사는 이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긴 사이즈 베개도 인기가 많다.
소형 가전제품과 경제력 있는 싱글을 겨냥한 고가 상품을 취급하는 GS이숍의 싱글전문매장 '싱글즈'는 2003년 오픈 후 3년여 만에 방문자 수가 10배 이상 늘어났다.
▶식당, 여행업체 등도 '윙크'.
"우리나라에선 혼자 밥 먹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해요. 무심코 혼자 다녔던 식당인데 어느 날부터인가 불쌍하게 보였는지 계란프라이를 얹어 주더라고요."(한 '싱글 카페' 회원의 글)
요즘에는 이런 설움을 당할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삼겹살을 파는 식당이나 레스토랑, 외식업체들이 끼니를 혼자 해결해야 하는 싱글족들을 위해 1인용 식사 공간을 많이 늘리고 있기 때문. 서너 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 대신 바 형태의 긴 테이블을 마련해 혼자 마음편히 식사할 수 있게 적극적인 1인 고객 대상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특히 패스트푸드점 경우 창가쪽 싱글석 수가 1, 2년 새 2배 이상 늘었다. 점심 시간에 오는 손님 중 반 이상이 혼자라는 게 업계의 얘기다.
여행업체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싱글족을 위한 여행상품 개발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일반 여행상품과는 달리 혼자 사용하는 객실도 추가요금을 받지 않고 프로그램도 철저히 싱글 구미에 맞게 짜고 있는 것. 고나우여행사 이영석 부장은 "일반적인 패키지 상품보단 항공권이나 숙박만 예약한 채 본인이 좋아하는 테마를 정해 홀로 여행을 다녀오는 싱글족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스파, 아로마 테라피, 몸매관리 산업 등도 싱글족이 주요 고객층이다. 풍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자신을 가꾸는 데 아낌없이 투자하는 싱글족이 늘어나면서 이들 업종이 각광받고 있다. 만화책, 퍼즐 등 '혼자 놀기' 상품도 싱글족들에게 인기가 많고 뮤지컬의 주 관객도 이젠 20·30대 싱글족들이다.
◇ 싱글족, 얼마나 되나
싱글족의 증가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 추세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5년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는 317만 1천 가구. 2000년 22만 4천 가구보다 42.5%나 늘어나 전체 가구의 20%를 차지했다. 가정집 5곳 가운데 1곳이 나홀로 가구인 셈. 30대 미혼자도 1995년 76만여 명에서 2005년 177만여 명으로 10년 사이에 2.3배 늘어났다.
스스로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비혼(非婚)은 물론 비자발적인 만혼(晩婚)도 함께 늘어나는 추세다. 여기에 부모에게서 독립했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싱글족은 전국적으로 650만여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현상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여서 중국 경우, 젊은 싱글족이 연평균 1.5%씩 늘어나 2014년엔 9천130만 명에 이르고, 인도도 연평균 3.6%씩 증가해 9천330만 명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영국은 또 여자친구나 가족 없이 홀로 사는 35~45세 사이 남성 싱글족이 새로운 사회계층으로 부상하고 있다. '유감스러운 독신자(Regretful Loner·RL)'로 불리는 이 신(新) 사회계층의 등장은 1980년대 들어 이혼과 가족 해체가 급증한 데 뿌리를 두고 있으며 영국 정부 전망에 따르면 매년 15만 명이 홀로 살기를 선택하고 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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