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짓기 위해 설계도가 필요하듯 논술 시험에서도 글을 쓰기 위한 계획이 필요하다. 글을 쓰기 위해 짜놓은 글의 뼈대를 개요라고 한다. 개요 짜기의 요체는 글감의 내용과 배치를 균형감 있게 구성하는 것이다. 개요를 작성하지 않고 그냥 머릿속에 있는 내용을 생각나는 대로 써나가면 논리의 일관성을 잃기 십상이다. 물론 글쓰기에 뛰어나고 비상한 능력을 가진 학생이라면 개요 짜기 없이 논제가 파악되는 대로 답안 작성을 시작해도 되지만 대부분 실패할 확률이 높다. 개요를 작성할 경우 글의 전체적인 흐름을 유지할 수 있고 중요한 내용을 빠뜨리지 않고 또 쓸데없는 중복을 막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글의 호흡을 적절히 운용해 분량 조절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상당수 수험생들은 논술시험에서 개요 짜기를 하기는 하지만 실제 답안 작성에 그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개요 짜기의 시작은 거창하지만 결론은 모호하게 작성된 '미완성형'이 많기 때문이다. 서론에서는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개요를 작성하지만 본론에서 결론으로 갈수록 추상적이고 형식적으로 작성해 실제 논술시험에서는 '개요 따로, 글쓰기 따로' 식으로 답안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논술의 개요 짜기는 서론에서 결론까지 탄탄한 구도를 이루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또 단어를 나열하는 방식보다는 문장 완성형으로 하는 것이 좋다. 개요 작성 시간은 논술 고사 시간(2시간~2시간 30분)의 30~40%가 적당하다.
문학과 역사에 나타난 인물에 대한 평가는 시대적으로 의미를 달리하고 있다. '삼국지'의 유비와 조조는 어지러운 세상에 몸을 일으켜 천신만고의 역경을 뚫고 한 국가의 기반을 닦은 비범한 영웅들이었다. 유비와 조조는 전통적인 인물 평가에서 각각 선인과 악인의 표상으로 비유됐다. 그러나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조조는 난세의 영웅으로 재평가를 받은 반면 유비는 무능한 CEO의 전형으로 평가절하 되기도 했다.
'흥부전' 역시 창작 당시 흥부는 선의 상징이었고 놀부는 악의 전형으로 간주됐다. 그러나 서양의 물질 중심적 관점에서 흥부는 나태와 무능력의 표상으로, 놀부는 근면하고 성취욕이 강한 능력 있는 기업가의 모범으로 평가가 달라지기도 했다.
산업화 이후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는 21세기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관점에서 흥부와 유비, 놀부와 조조를 재평가해 논술하시오.
개요 짜기는 우선 어떤 주장을 내세울지를 고민하고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논리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근거가 일관성을 잃지 않고 설득력을 갖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흥부와 유비의 장점을 내세워 새로운 시대의 가치를 정립하자는 주제로 개요 짜기를 해 본다.
주제문 : 흥부와 유비의 덕목을 재평가하자
Ⅰ 서론 : 시대 흐름에 따라 인물에 대한 가치 평가는 변화하기 마련이다.
Ⅱ 본론
(1) 시대가치가 물질 중심주의로 변하면서 놀부와 조조가 높이 평가받는다.
① 산업화 시대의 가치변화로 흥부와 유비는 무능력자로 평가된다.
② 놀부와 조조는 노력형, 자수성가형 인물로 높이 평가받는다.
(2) 놀부와 조조의 성공요인은 권모술수와 편법이다.
① 놀부와 조조에 대한 높은 평가는 동기와 과정보다 결과만 중시하는 사회 풍조 탓이다.
② 물질만능 풍조로 공정한 게임의 룰이 무시되고 있다.
(3) 놀부와 조조의 높은 평가는 왜곡된 사회현상의 반영이다.
① 잘못된 사회가치의 전도현상으로 준법의식은 패자의 몫으로 간주되어버렸다.
② 불법 수단을 동원한 성공이 칭찬받는 것은 천민자본주의의 후유증 때문이다.
Ⅲ 결론 : 협력과 상생의 새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흥부와 관용과 유비의 신의를 배워야 한다.
역사의 변천은 새로운 정신적 가치를 낳게 마련이다. 산업화 시기가 빠른 속도와 물질 가치를 숭상하는 시기였다면 오늘날의 21세기는 패스트푸드 대신 웰빙 문화와 '느림의 미학'을 쫓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세기가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에 따른 인간 소외와 몰개성을 낳는 시기였지만 이제는 인간의 주체성과 개성, 협력과 상생을 부르짖는 새로운 의식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물질 중심의 가치가 모든 것을 우선하던 산업화 시대의 격변기를 맞으면서 흥부와 유비는 존경받는 도덕적 인물의 권좌에서 무능력자로 추락하고 말았다. 대신 흥부와 유비의 잃어버린 권좌는 살벌한 생존 경쟁의 승리자로 새로이 자리매김한 놀부와 조조가 대신 차지해버렸다.
흥부는 게으른 성격에 노력도 비전도 없는 인물로 폄하됐다. 유비 역시 병법이 서툴러 전투에서 번번이 패하는 장수인데다 지략은 제갈공명에게 빌리고 전투력은 관우와 장비, 조자룡 등에 의지한 무능한 제왕의 표본으로 평가를 받기도 했다.
반면 놀부는 자식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준 자상한 가장이며 자산을 일구고 관리할 줄 아는 노력형 기업가로 새로운 평가를 받았다. 조조 역시 가진 것 하나 없는 척박한 풍토에서 맨손으로 성공을 일군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인물로 칭송됐다.
물질을 우선으로 하는 산업화 시대의 사고는 우리의 전통주의적인 권선징악 정서를 무너뜨려 나갔다. 권선징악 측면에서 흥부와 유비는 높게 평가되었지만 물질 가치를 중요시한 관점에서 놀부와 조조를 능가하기 힘들었다. 놀부는 다른 사람의 비난에도 아랑곳 않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부를 축적하는 데 성공한 인간형이었다. 조조 역시 철저한 자기중심주의와 권모술수로 천하를 평정한 인물이었다. 놀부와 조조의 성공은 과정보다는 결과가, 동기보다는 수단이 중시되는 가치구조에서 당연히 예견된 결과이기도 했다. 놀부와 조조의 성공을 높게 평가하는 관점에서는 동기와 과정이 중요하지 않다. 오직 결과만이 중요할 뿐이다. 동기의 순수성과 과정의 공정성을 무시한 편법과 부조리는 평가 수단에서 제외되고 있는 것이다. 공정한 경쟁과 의미 있는 과정의 중요성이 무시되고 오직 결과만이 중시되는 가치 체계에서 편법과 반칙이 비일비재했다. 공정한 게임의 룰이 적용되지 않는 분위기에서 착취와 억압, 속임수로 성공한 놀부와 조조가 높게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놀부와 조조가 추앙받던 시대에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사회규범을 준수하고 과정을 중시하는 '준법의식'은 패자의 몫이었다. 성공한 자에게는 권모술수와 임기응변의 편법 수단이 오히려 신화처럼 칭송됐다. 이 같은 불법 탈법 수단을 동원한 성공이 칭송의 대상이 된 것은 천민자본주의의 산물 때문이다. 정신적 가치보다는 물질 만능만을 추구하는 천민자본주의의 후유증들이 반칙으로 성공한 놀부와 조조를 칭송하게 만든 것이다.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현하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날 흥부와 유비의 인간상을 재정립해낼 필요가 있다. 흥부와 유비는 부를 축적하기 위해 또는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무리한 반칙과 편법을 동원하지 않았다. 비록 가난하게 살망정, 또 전투에 질망정 인간에 대한 신의를 버리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악행을 저지른 형까지 용서한 흥부의 관용, 유비가 의형제와 신하 등에 보낸 인간에 대한 두터운 신의는 대립과 갈등의 관계를 청산하고 상생과 협력의 새로운 시대 담론을 이끌기 위한 소중한 가치인 것이다.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