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를 앞두고 농산물의 '원산지 표시 전쟁'이 시작됐다. 한 푼이라도 더 벌려는 상인들은 수입산을 교묘히 속여 국내산으로 팔거나 아예 원산지를 표시하지 않으려 기를 쓰고 있는 반면 단속반은 값싼 수입산의 국내산 둔갑, 유통을 막으려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 29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북지원의 '원산지 표시' 단속에 동행했다.
◇여전한 국내산 둔갑=29일 오전 대구 달서구 서남시장.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북지원 기동단속반이 '원산지 표시 여부' 단속에 나선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 수입산 양념돼지갈비를 국내산으로 둔갑시켜 팔던 식육점이 단속됐다. 곧 실랑이가 벌어졌다. 단속반원이 "돼지고기 앞다리에 원산지 표시가 없는데 국내산 맞느냐?"고 묻자 종업원은 "수입산은 취급 안 한다."고 대꾸했다. 그러나 곧 대형냉장고에서 수입산이 발견됐다. 뒤늦게 나타난 주인(29)은 "종업원이 잘 몰라서 그랬다. 수입산 맞다. 개선할 테니 봐달라."고 했지만 과태료 30만 원 처분을 받았다.
10여 분 뒤 양념갈비에 이용되는 양념을 제조하는 H식품. 여기서 만들어진 대부분의 간장소스 상품에 원산지가 표시돼 있지 않았다. 주인 Y씨(39) 씨는 "얼마 전에도 식약청 단속에 걸려 영업이 너무 어렵다."며 "제대로 표시 할 테니 이번에는 봐달라."고 했다. 이곳 역시 과태료 30만 원. 경고를 했음에도 고쳐지지 않은데 따른 조치다. 단속반은 이날 25곳을 점검해 일부는 경고, 2곳은 과태료 처분했다.
◇쫓고 쫓기는 싸움=같은 날 오후 2시쯤 대구 북구 칠성시장. 곶감을 판매하는 G상회에서는 단속반이 뜨자 부랴부랴 '상주곶감', '중국산' 등이 적힌 스티커를 붙이기에 바빴다. 곶감의 경우 중국산이 국내산으로 둔갑해 판매되기 일쑤여서 특히 예민한 제품. 한 상인은 "제품마다 일일이 원산지 표시를 다 붙이기 힘든 게 사실"이라며 "앞으로 조심하겠다."고 사정했다. 이어 찾아간 D축산유통은 교묘한 방법으로 법망을 피해 영업 중이었다. 가게 앞 3단짜리 진열냉장고에 '국내산 순 암퇘지 100%'라는 현수막을 붙여 2, 3번째 칸에 진열돼 있던 '외국산 삼겹살, 소고기'를 가려 수입산이 진열돼 있는 것을 교묘히 감추고 있었던 것. 실제 도매로 넘어간다는 육류는 모두 검은 봉지에 담겨 판매되고 있어 현수막 뒤에서 담을 경우 국내산인지 수입산인지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주인은 단속반이 뜨자 냉장고에 붙어있던 현수막을 부랴부랴 뗐다. 조정영(28) 단속반원은 "이곳의 경우, 수입산 육류를 현수막으로 가려놨지만 허위표시로 단속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며 "불시에 한번 더 단속을 나와 개선하지 않았을 경우 행정처분할 예정인데 이렇게 교묘하게 장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원산지 표시 전쟁은 소리없는 싸움이었다. 한 곳을 들러 단속하면 같은 업계의 업주들끼리 '비상연락망'을 통해 단속을 알리는 것. 또 "생계형인데 해도 너무한다." "생계형이니까 봐 달라."는 애원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C축산의 경우 양념불고기에 원산지 표시가 없었지만 주인은 "오전에 손님이 표시 팻말을 밟아 부숴버려 어쩔 수 없었다. 한 번만 봐 달라."고 사정했다. 그러나 곧 멀쩡한 팻말이 냉장고 아래에서 발견됐다.
이정훈(44·농업주사보) 단속반원은 "정말 생계형으로 볼 수 있는 소규모 노점상은 대부분 원산지를 표시하고 있지 않아 행정처분을 놓고 고민할 때가 많다."며 "법망을 교묘히 피한 상행위가 아직 눈에 띄긴 하지만 언론 홍보와 지속적인 단속으로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올해 대구·경북 등지에서 원산지 미표시 단속을 벌여 허위표시로 인한 형사입건 32건, 미표시 행정처분 27건(과태료 276만 원)을 적발했다. 지난해에는 712건 중 원산지 허위표시 294건(6천302t), 미표시 418건(476t)이 단속됐다.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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