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Escape)새들의 천국 '을숙도' 기행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황지우 시인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중에서

시인이 이상향을 향한 새들의 비상을 노래했던 곳, 을숙도(乙淑島). 새가 많고 물이 맑은 섬이라는 이름부터 정겹다. 굽이굽이 800리를 흘러온 낙동강이 바다를 만나기 전 마지막 용틀임을 하면서 만들어낸 섬이 을숙도다.

그 품안에 사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모든 것을 내어준 낙동강은 을숙도란 모래섬을 만들어 새들에게도 휴식처를 만들어 준다. 부산 사하구 을숙도는 서식하는 새의 종류가 200여 종에 달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철새도래지 가운데 하나. 4계절 먹이가 풍부하고 추운 겨울에도 물이 얼지 않으며, 넓은 갯벌과 갈대밭이 우거져 있어 10만 마리에 이르는 새들의 쉼터와 잠자리가 되고 있다. 을숙도 자체가 천연기념물 제179호로 지정돼 있다.

26일 낮 을숙도 가장 남쪽에 있는 탐조대. 보기 힘든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천연기념물인 큰고니와 청둥오리, 고방오리 등 을숙도에 사는 겨울철새 1천여 마리가 한 데 모여 군무를 펼친다. 150여 마리에 이르는 큰고니들의 우아한 자태와 유영 모습은 발레 '백조의 호수'보다 아름답다. 큰고니들의 뒤편과 옆으로는 청둥오리를 비롯한 오리 수백여 마리가 더불어 유영을 하면서 자태를 뽐낸다.

다른 곳에서 5~7마리 정도를 보는 것도 행운일 정도로 '귀한 손님'인 큰고니를 100여 마리나, 그것도 불과 40~50m 거리를 두고 본다는 사실에 작은 흥분에 휩싸인다. 탐조대에서 큰고니를 본 박규량(11) 양은 "가까운 데서 예쁜 새들을 봐 기분이 좋다."고 했다. 카메라를 든 사람들은 "두 번 보기 힘든 광경"이라며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겨울철새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것은 먹이가 부족한 새들을 위해 사람들이 먹이를 주기 때문. 먹이를 주는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부산환경운동연합 '낙동강하구를 생각하는 모임' 전시진(53) 대표는 "인간을 경계하는 새들과 지금은 친구처럼 지낸다."고 했다. 새들의 먹이는 잘게 자른 고구마와 감자. 하루 한 번 1마리당 300g정도씩 바다에 뿌려준다. 경쟁적으로 먹이를 먹는 새들의 모습과 하늘에 울려퍼지는 울음소리에서 새삼 '생존'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을숙도를 찾는 탐조객들은 한때 주말마다 1천~2천여 명에 달했다. 그러나 조류독감이 나타나면서 지금은 100~200명 정도로 줄었다. 전 회장은 "철새들이 조류독감을 옮긴다는 것은 매우 희박한 일"이라며 "사람들이 적은 지금이 탐조하기에는 안성맞춤"이라고 했다. 하긴 지금까지 야생조류를 통해 인간이 조류독감에 감염됐다는 보고는 단 1건도 없다.

을숙도에서 겨울을 난 큰고니와 같은 철새들은 5천km를 날아 시베리아 등 북극권까지 여행을 한다. 충분한 휴식과 먹이를 섭취하지 못한 새들은 중간에서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다. 그 비율이 절반에 이른다고 전 대표는 귀띔했다.

인간들이 보기에는 편안한 모습이지만 사실 철새들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글·이대현기자 sky@msnet.co.kr

사진·박노익기자 noi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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