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할아버지와 사는 정신지체장애 2급 동수·동진이

"제 나이 벌써 팔순을 바라봅니다. 내 새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손주들을 위해선 10년은 더 살아야 할텐데···앞날이 걱정입니다. 다 못난 이 할아비 탓입니다. 아들 몸이 성치 않은데 손주까지 정신이 온전치 못하네요."

"동수(가명·15)와 동준(가명·12)이가 웃으며 바라볼 때면 누가 가슴을 송곳으로 긋는 듯 합니다. 손주들의 예쁜 얼굴을 잊지 말아야 할 텐데···요즘엔 왜 이리 정신이 혼미한 지···. 자신의 이름과 나이조차 모르는 이 아이들을 두고 어떻게 눈을 감지요. 이 가여운 아이들을 어찌하면 좋습니까. 간절히 빌어봅니다. 우리 손주들, 고등학교 졸업할 때 까지만이라도 살게 해 주십시오."

동수 할아버지(77)는 오늘도 얼음장 같이 차가운 물로 아이들의 옷을 손빨래했다. 한 달 전, 동네 어귀에서 주워온 세탁기가 고장 나 버렸지만 할아버지에겐 세탁기를 고칠 능력도, 전기 수리공을 부를 돈도 없었다.

할아버지는 손가락 마디마디에 시커먼 공업용 테이프를 말아놓았다. 빨래를 하다 찢지고 갈라진 손가락들, 하지만 붙일 붕대는 집에 없었다. 얼기설기 대충 붙여놓은 테이프 사이로 찢어진 속살이 내비쳤다. 대문 입구에는 할아버지가 그저께 널어 놓은 빨래들, 땟물이 제대로 빠져있지도 않은 옷가지들이 젖은 채 꼬깃꼬깃 걸려 있었다. 군데군데 찢어진 허름한 바지는 할아버지의 유일한 솜바지였다.

할아버지의 집은 잠시 서 있지도 앉아 있지도 못할만큼 차디찬 냉골이었다. 고혈압에 당뇨까지 앓고 있는 할아버지는 치질이 심해 방바닥에 잠시도 앉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기름통 하나를 다 채우는데 드는 35만 원 때문에 일찌감치 난방을 포기했다고 했다. 그 돈은 할아버지네 한 달 생활비를 훌쩍 넘는 액수다.

할아버지는 5년 전 동수 아버지가 집을 나간 후 손자들을 맡아 키우고 있다. 정신지체장애를 앓던 동수 아버지는 지긋지긋한 가난을 못견딘 아내가 집을 떠나자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는 "아들이 어디에선가 구걸을 하며 노숙자로 살고 있다는 얘길 들었다."고 짤막하게 말했다. 말하고 싶지 않은 탓일 것이다. 평생을 온전치 못했던 아들을 홀로 키워냈던 할아버지. 이제 허리가 완전히 굽은 노인이 됐지만 그에겐 여전히 아들과 같은 정신지체장애인인 손자들이 남아 있다. 정신지체장애 2급으로 집에 돌아오는 길을 가끔 잊어버리는 동수를 어제도 경찰서에서 찾아왔다.

"이 추운데 대봉교 다리 밑에서 몇 시간째 있었던 모양입니다. 무엇이 그리도 그리운지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네요. 자식들 두고 떠난 어미, 아비가 다 뭣이라고···."

할아버지는 손주들을 위해 매일 폐지를 주워 모으고 있다. 복지관에서 주는 반찬과 쌀만으로는 먹성좋은 아이들의 한 달 끼니로는 부족했다. "파지 100kg 모으면 5천 원 줍디다. 그거라도 모아야지 아이들 안 굶기지···." 끼니 걱정만 했던 할아버지는 요즘 근심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제대로 입히고 먹이지도 못했던 동준이가 학교에서 놀림을 당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 덩치가 작고 의기소침해서 그런지 친구들이 놀리나 봅니다. 못난 것이 제 탓이 아닌데 왜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힘겹게 살아야 하는건지요···." 손자 이야기를 하던 할아버지는 복받쳐 오는 감정을 힘겹게 추스렸다. "백발을 한 노인이 아이 학교를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네요. 우리 동수, 동준이 씩씩하게 커야 합니다. 아이들을 두고 혼자 어찌 죽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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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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