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강세와 달러 약세가 새해 들어서도 좀처럼 반전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슈화되고 있는 달러 약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오히려 엔화 약세. 달러 약세는 어느 정도 예상되었지만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엔화 약세에 지역 기업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대한민국 사는 게 괴롭다"
지역 최대 무역업체인 경북통상(주). 일본으로 파프리카를 비롯해 양배추, 배추, 가공 채소 등을 수출하던 이 회사는 최근 들어 파프리카 수출 외에 다른 채소의 대일본 수출을 중단했다. 그나마 파프리카는 워낙 품질이 뛰어난 탓에 경쟁력을 갖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수익률은 과거에 비해 10% 정도가 떨어졌다. 정동식 대표는 "엔화 급락으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피부로 느끼는 체감경기는 더욱 심가한 수준"이라고 했다.
엔화 약세는 제3국으로의 수출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대만에 사과를 수출하는 이 업체는 일본 사과와 경쟁하면서 수출량도 줄고 있다. 정 대표는 "10㎏짜리 사과의 경우 우리는 20달러, 일본은 26달러를 받았는데 지금은 우리가 23달러 정도 받아야 하는 판이니 당연히 밀릴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엔화 약세로 인한 직접적인 누적 피해액만 150만 달러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농산물이란 특성 때문에 원가 절감에도 한계가 있다고 정 대표는 말을 이었다. 정 대표는 "국내 시세와 연동이 되기 때문에 원가 절감도 만만찮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이 업체는 일부 농산물을 내수로 전환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성서공단에 자리한 대현테크는 연 1천 억원을 수출하는 국내에 내로라하는 철강설비 생산업체다. 하지만 이 업체도 계속된 엔화 약세에 꼼짝을 못하고 있다. 일본에 한 해 200억~250억 원 상당의 제철과 철강플랜트를 수출하는 이 업체는 최근 엔화가 지난해보다 20% 정도 급락하면서 적자가 눈덩이처럼 쌓이고 있다. 장용현 대표는 "수익률이 보통 7% 수준인데 엔화는 종전보다 20% 가량 떨어졌으니 적자가 날줄 뻔히 알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수출을 하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환변동보험을 들기는 했지만 손실을 만회하기는 역부족이라는 것.
장 대표는 "현재 계약을 100엔 당 800원 정도로 잡고 하지만 시세는 700원 대라 일본 바이어들이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는 계약 취소까지 발생하는 상황이다. 장 대표는 "원가 절감을 위해 보통 밤 9시까지 회사에 남아 생산에 뛰어들고 있지만 별 소득이 없다."고 푸념했다. 장 대표는 "최근 같아선 한국에 사는 자체가 괴로움의 연속"이라고 했다.
성서공단의 절삭공구업체인 한국OSG도 지금처럼 환율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일본 수출은 전체 수출의 10% 정도지만 벌써 7억 원 정도의 손해를 봤다는 것. 이한우 상무는 "20년 가까이 거래를 해오던 터라 가격 조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푸념했다. 그나마 일본에서 원자재를 수입하고 있어 조금 상쇄 효과가 있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 이 상무는 "아무래도 엔화 약세로 인해 일본 시장 개척이 소극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매년 원가 절감과 생산성 향상을 기하고 있지만 지금같은 추세로 엔화가 계속 하락하면 갖은 노력도 허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외의 결과…뚜렷한 대책도 많지 않다
지금의 엔화 약세는 조금 의외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국제투자은행에서 올해부터 엔화가 강세를 보일 거라고 전망하는 등 각종 전문연구 기관에서 엔화 반등을 예상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엔화는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춘식 한국무역협회 대구지부장은 "미국은 금리가 오를 만큼 올랐고 일본은 향후 금리가 더 올라갈 가능성이 있어 엔화 강세가 예상되지만 이는 단순히 시장적 상황으로 바라볼 뿐"이라며 "그 만큼 일본 외환 당국의 정책이 엔저를 유지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설명했다. 결국 일본 입장에선 환율 정책을 잘 꾸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자국 자산을 달러 자산으로 상당 부분 투자하고 있는 상황이라 미국이라도 함부로 개입할 수 없다고 했다. 김 지부장은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외환 당국이 개입할 환경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외 여건에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심하다."고 했다. 결국 시장 상황에선 엔화 강세가 예상되지만 예측이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것.
일단 업체들로서는 환변동보험이나 선물환 거래를 통한 환 헤지(위험 회피)에 주력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고 했다. 김 지부장은 "보험이나 선물환 등이 현장에선 피부로 크게 와닿지 않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것 외엔 뽀족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올해는 환율이 오를 때를 예상해 환차익까지 기업에 돌려주는 새상품이 나왔기 때문에 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기업 내부적으로는 원가 절감과 함께 환율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경쟁력 갖춘 제품 생산에 주력해야 한다고 했다. 김 지부장은 "과거처럼 업체들이 환율에 기대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단정하면서 기업의 뼈를 깎는 노력을 당부했다. 또한 정부의 좀 더 적극적인 정책 배려도 함께 필요하다고 했다. 국내 외환 수급을 신축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것.
신경택 한국수출입은행 대구지점 팀장은 "보험에 관해 아직 지역기업들이 이해득실을 따지는 경우가 많은데 하나의 투자로 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한 가능하다면 엔화를 달러나 유로화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특히 유로화는 최근 계속 안정세를 보여 좀 더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신 팀장은 "종전 은행에 대출금이 있는 일본 수출 기업의 경우는 굳이 보험 가입을 하지 않더라도 엔화 수출 대금만큼 원화 대출을 엔화 대출로 전환하면 자연스레 환 헤지가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김세환 "아들 잘 부탁"…선관위, 면접위원까지 교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