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어느 시인의 죽음

시인이 존중받는 이유는 그들이 세상의 권력과 욕망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시인은 세상과 삶을 바라볼 때 겉모습보다는 내용에 먼저 접근하고 어떤 욕망에 앞서서 그 욕망이 가져다 줄 허망을 먼저 헤아리는 사람들이지요.

시인은 그 자신 외롭고 춥지만 가능한 한 눈앞의 이득보다 보이지 않는 진실 쪽에 삶의 의미를 둡니다. 지난 주 그런 삶을 살아온 한 시인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지난 12월 중순, 해가 가기 전에 대구에 한번 놀러가겠다고 예의 씩씩한 목소리로 전화를 하더니 한 달이 채 못 되어 부음을 왔습니다. 그것도 무슨 사고가 아니라 병 때문에 그렇다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입니다.

죽음이란 늘 이렇게 아무 준비없는 사람에게 뒤통수를 치는 것인지요. 죽음 앞에 뒤늦게 솟아나는 그리움과 아쉬움은 자책과 후회를 더했습니다. 망연한 사람들, 그저 후일담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엮고 풀어보지만 그는 더 이상 들을 수도 말 할 수도 없는 곳에 있습니다. 생전 그의 피와 살점이었던 네 권의 시집이 우리 곁에 놓여 있을 뿐, 그는 완벽하게 허공으로 돌아갔습니다.

그의 빠른 죽음은 어쩌면 아무 것도 남기지 않으려는 그의 개결한 삶에 닿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평소 그의 신조에 따라 봉분 하나, 묘비 하나 남기지 않았습니다. 비록 병든 몸이지만 혹시 장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 나눠주라고 가족들에게 당부를 했으며, 특히 산골장(散骨葬)으로 장례를 치러달라고 했답니다.

그야말로 아무런 흔적도 없이 가고자 했던 겁니다. 그의 유언대로 유해는 회백색 가루가 되어 지리산 자락에 흩어졌습니다. 지난 주말의 눈보라, 눈 뜰 수 없이 몰려오던 백색의 전령들은 그 시인이 쓴 생애 마지막 시가 아니었을까요.

시인은 언어로만 존재합니다. 그는 언어로 세상의 구석구석을 관찰하고 발견했을 뿐 아무 것도 자신의 소유가 아님을 알았던 것입니다. 삶은 허무이며 세상은 하나의 허공이라서 결국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우리는 죽음까지도 덕지덕지한 욕망에 닿아있는 사례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마지막까지 헌신과 배려를 실천한 삶이야말로 진정한 시인의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봄이 오면 보고싶은 얼굴들을 만나러 꼭 한 번 대구에 가겠다던 그의 말씀은 이제 유언이 되었고, 한 번도 흔쾌히 배려해 드리지 못했던 이 후배의 몽매함만이 오래도록 부채로 남아 문득 문득 그립고 부끄러울 것입니다. 지면을 빌어 명복을 빕니다. 부디 평안하십시오.

이규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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