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것인데, 노무현 정부가 망쳐버린 것들 가운데 '혁신'이 있다.
이 정부 들어 국정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 온 게 혁신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데나 "혁신 혁신", 말로만 "혁신 혁신" 하는 수준이었다. 예컨대 공공기관 지방 이전과 혁신은 아무 관계도 없는데 공공기관이 이전해가는 도시를 혁신도시라고 이름붙이는 식이었다. 혁신은 뼈를 깎는 자기쇄신, 구조조정을 동반해야 하는데 돈 씀씀이나 몸피가 커지기만 했으니 역시 거꾸로 가는 혁신이었다.
이 같은 혁신 오남용, 사이비 혁신 때문에 공무원들은 물론 국민들 사이에 극심한 혁신 피로감이 생겼다. (정확히 말하면 이건 혁신 피로감도 아니다. 혁신 피로감은 혁신을 제대로 수행할 때 생기는, 일종의 부작용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혁신은 기업이든 관공서든 설사 보통사람이라 해도 살아남아서 더 발전하려면 꼭 필요한 것이다. 어쩌다 보니 혁신 하면 모두들 고개를 외로 꼬는 형편이 되었지만, 혁신이 글로벌 경쟁시대에 선택 아닌 필수조건인 것은 분명하다.
革新(혁신)을 한자 그대로 하면 가죽(革)을 새로이(新) 하는 것이다. 가죽, 즉 몸의 피부를 생으로 바꾼다니, 이것은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이다. 이처럼 혁신의 과정은 힘들고 어렵지만 그 결과는 좋은 것이다.
혁신의 필요성을 단적으로 표현한 게 솔개의 우화이다. 40년을 살고 나면 두 갈래 선택의 길에 서게 된다는 솔개. 쇠약해져서 그냥 죽는 길이 아닌 갱생의 길을 택하게 된다면 부리와 발톱과 깃털을 새로이 하는 매우 고통스런 6개월을 거쳐 30년을 더 산다는 솔개 이야기 말이다. (올해 창립 40주년을 맞은 대구은행이 100년 기업으로 도약하자는 솔개프로젝트를 펴고 있는 것도 이 솔개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다.)
연초부터 지방정부마다 혁신운동이 만만찮다. 지난해 5월 지방선거로 들어선 시장·군수·구청장들이 의욕을 갖고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것들을 사람 바뀌었으니 으레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다. 끊임없는 자기 혁신 속에 조직이나 사람이나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는 것이므로.
문제는 혁신의 기법, 즉 방법론이다. 혁신의 대명사로 불리는 도요타자동차의 구호는 알다시피 "마른 수건도 다시 짠다."이다. 그런데 이 구호의 全文(전문)은 이거다, "마른 수건도 지혜로 짜면 짜진다." 그러면 지혜는 어디에서 나올까? 열정과 교육에서다.
포항에서 박승호 시장이 나서서 공무원 혁신교육에 나선 것은 따라서 바람직한 일이다. 경남의 한 시가 지난달 공무원 100명 가까이를 혁신전문교육기관에 연수 보낸 것도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이들이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지금까지 혁신을 주창한 이는 너무나 많고, 혁신이 필요하고 중요한 것임을 모르는 이도 없지만 정작 혁신에 성공해서 성과를 낸 경우는 참으로 드물기 때문이다. 그만큼 혁신은 認知(인지)의 문제가 아니라 實踐(실천)의 문제이다.
게다가 혁신은 일회성이 아니다. 한번 성공했다고 해서 만족해서는 혁신이 아니다. 도요타자동차의 혁신기법인 TPS(Toyota Production System·Total Profit System)에서 "개선은 무한하다. 지금의 방법이 가장 나쁘다고 생각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포스코의 혁신활동이 언제 끝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포스코가 혁신과 개선의 역사에 있어서 막 출발점을 떠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포스코를 탈바꿈시켰다는 PI(Process Innovation)의 주역으로 평가받는 포스코 오창관 포항제철소장의 말도 같은 맥락이다.
혁신은 또 집요하게 추진돼야 한다. 역시 TPS에서는 "문제에 부딛치면 5번은 '왜(Why)?'라고 물어보라."고 강조하고 있다.
새해 관공서마다, 기업마다 들불처럼 일어나고 끈질기게 지속돼서, 끊임없이 혁신해 나가는 혁신운동을 기대해본다.
이상훈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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