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키치, 우리들의 행복한 세계

키치, 우리들의 행복한 세계/조중걸 지음/프로네시스 펴냄

'키치(Kitsch)'란 무엇일까. 키치에 대한 의견은 엇갈린다. 쓰레기 문화로 취급받는가 하면 전위 미학의 형식으로 칭송 받기도 한다. 이 책은 오늘날 일상적이고 대중적인 용어로 쓰이고 있지만 실상 그 의미가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고 있는 키치를 분석했다.

키치라는 용어는 1870년대 독일 남부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당시 예술가들 사이에서 '물건을 속여 팔거나 강매한다'는 뜻으로 사용되다 갈수록 의미가 확대되면서 저속한 미술품, 일상적인 예술, 대중 패션 등을 의미하는 폭넓은 용어로 쓰이게 됐다.

19세기 말 유럽 전역 진행된 급속한 산업화로 대중문화의 파급 속도도 빨라졌다. 이 시기 미술품이나 그림을 사려는 중산층의 욕구도 강해졌다. '키치'는 바로 이러한 중산층의 문화욕구를 만족시키는 그럴 듯한 그림을 비꼬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면서 고급문화나 고급예술과는 별개로 대중 속에 뿌리박은 하나의 예술 장르로 개념이 확대되어 현대 대중문화·소비문화 시대의 흐름을 형성하는 척도를 제공하기도 한다. 1970년대 한국에서 유행한 촌티패션을 비롯, 1990년대의 뚫린 청바지, 배꼽티, 패션의 복고 열풍 등도 하나의 키치 문화로 보는 시각이 있다. 키치 현상을 보편적인 사회현상, 인간과 사물 사이를 연결하는 하나의 유형, 일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기능적이며 편안한 것을 추구하는 사회적 경향 등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아놀드 하우저는 '예술의 사회사'에서 "키치가 내세우는 요구들이 아무리 고상하더라도 키치는 사이비 예술이며 달콤하고 싸구려 형식을 갖춘 예술로서 기만적인 현실 묘사에 불과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술사학자이자 철학자인 저자의 시각도 아놀드 하우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저자는 우리의 허위의식과 무지, 그리고 기만을 자양분으로 번성하고 진지한 예술임을 가장하는 예술로 키치를 정의한다. 키치는 무의미를 유의미로 포장하고 기만적 행복으로 대중을 사로잡기 때문에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 저자는 대중을 시대착오로 이끌어가는 키치 속에서의 병든 행복보다 무의미와 부조리를 직시하는 건강한 불행을 권고한다.

저자는 키치 탄생의 맥락을 근대화에 따른 인간 소외와 절망속에서 찾고 있다. 노동을 통한 진정한 자아실현이 불가능해진 현대인들이 소비를 통해 채우려는 존재 욕구를 키치가 파고 들었다고 주장한다. 산업혁명 이후 증가한 중산층이 귀족들이 향유하던 고급예술을 누리고 싶지만 그럴 수준이 안되었기 때문에 이를 모방한 키치가 폭발적으로 나오게 되었으며 안일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순수예술, 고급예술의 자리를 넘본다는 점에서 키치는 악덕이라는 설명이다.

나아가 저자는 현대 예술이 키치와의 대립 속에서 어떻게 성장했는지 철학적, 사회학적 관점으로 설명하고 있다. 구태의연함과 허위의식을 철저히 파괴하려 했던 '다다이즘'부터 관습적 자아를 허물고 순수한 시각세계를 구축하려 했던 '인상주의', 내면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부르조아들이 구축해 놓은 질서에 돌을 던진 '표현주의',근원적 삶의 가치를 복원하려 한 '모더니즘', 현실 자체의 허구성을 응시하며 부유하는 의미 위에서 의미 자체를 유희한 '포스트 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키치의 공세에 저항하고 키치 양식을 해체하기 위해 분투해 온 예술의 역사를 더듬어 간다.

또 피카소의 작품, 브레히트의 연극,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나보코프와 마르케스의 소설 등 경계와 장르를 불문한 전방위 탐색을 통해 현대 예술의 의미와 가치, 역사에 대해서도 파고 든다. 저자가 내세운 '우리들의 행복한 세계'라는 책의 제목은 반어적이다. 저자의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 독자는 읽는 내내 불편함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240쪽, 1만1천 원.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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