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10분 독서'와 '3년 일기'

경부고속국도 서대구 나들목을 지나면 도로변에 '學鄕(학향)의 도시 대구'라는 입간판이 서있다. 대구가 영남학맥을 이어온 선비의 고장이며 전통적인 교육도시임을 홍보하는 광고탑이다.

私學(사학)이 일찍 꽃피고 인구 대비 대학 숫자 등으로 보더라도 대구가 교육'문화 도시라는 자긍심을 지켜오면서 '학향' 도시의 평판을 받을 만한 저력을 다져왔음은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다.

다만 6공화국이 끝난 이후 정치적으로 또는 경제적으로 침잠되고 교육'문화 인프라가 타 자치단체에 비해 계속 낙후되고 뒤처지면서 학향이란 옛 명예와 전통이 물먹인 모시처럼 풀어져 버린 점이 아쉬웠다.

그러나 최근 맥 풀려가는 듯한 대구에 우리 아이들에 의해 옛 학향의 명예와 정신을 회복하는 희망의 불씨가 지펴지기 시작하는 느낌을 받고 있다.

대구시 교육청이 모처럼 이런저런 바깥 눈치 보지 않고 교육적인 소신으로 밀어붙인 '아침 독서 10분 운동'과 '3년 일기 쓰기' 캠페인이 바로 희망의 불씨다.

간판만 학향의 도시인 무기력한 대구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미 지난 연초 조사에서 우리 대구의 아이들이 전국 타 시'도 또래들보다 2배 이상 독서량이 더 많다는 연구 분석결과가 나왔었다. 타 지자체 교육청에서 10분 독서교육을 벤치마킹하러 몰려오고 있을 정도다.

교단의 선생님들이 더 잘 아시는 일이지만 초'중생들의 아침 수업시작 직전의 시간은 시끌벅적 장터 같은 시간대다. 그게 완전히 바뀌고 있다.

정규 교과과정 수업에 충실하다 보니 아침 독서시간이 10분밖에 여유가 안 나오지만 책 읽는 습관은 반복을 거치다 보면 몸에 배는 법이다. 하교 후 자율적인 독서시간으로 이어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10분이란 시간적 의미는 큰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교육청이 10분 독서운동에 곁들여 벌이고 있는 3년 일기 쓰기 캠페인은 학습 원리상으로도 매우 창의적인 발상일 뿐 아니라 글쓰기와 독서를 병합한 학습훈련은 사고력과 분석'집합'표현력이라는 복합적인 학습능력을 키워내는 시너지효과가 크다.

지금까지의 일기 쓰기는 하루하루의 기록과 반추에 그치지만 3년 연속 일기 쓰기 방식(초교 저학년 3년, 고학년 3년, 중고 각 3년 단위)은 매년 자신이 같은 시기(예를 들면, 올해 1월 새해와 작년 재작년의 새해)에 썼던 생각과 일과를 대비해 돌아보면서 자아 성장과 사고'가치관 등의 변화를 觀照(관조)해 봄으로써 더 나은 자기 변화를 꾀할 수 있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학교 바깥세상인 문구점에서도 이미 같은 날짜를 10칸으로 늘린 '10년분 일기장'이 한 권으로 묶여 팔리고 있다. 세상이 그만큼 바뀌고 있고 대구 교육계 지도자와 교사들의 혁신 마인드도 발 빠르게 앞서가고 있다는 예이기도 하다.

10분 독서와 3년 일기는 또한 논술과 직결된다. 논술에 관한 한 가장 훌륭한 효과적 학습법이다. 입시를 위한 발상은 아니었겠지만 입시라는 현실적인 교육목적에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경우다.

교육감님은 이왕 어린아이들이 시작한 10분 독서운동이 대구의 어른들 사회에도 파급돼 대구를 '책 읽는 도시 대구'로 만들고 싶어하는 눈치다.

모든 기관 단체'기업체'직장 등에서도 출근 후 집무 시작 10분 전에 직무 관련 전문서적이든 詩集(시집) 몇 쪽이라도 읽고 하루를 시작하는 범시민운동을 아이들과 함께 벌여간다면 가라앉은 도시에 새로운 기운, 용기나 희망, 꿈과 같은 신선한 정서가 돋아나지 않겠느냐는 바람인 것 같다.

힘 있고 높으신 기관단체장님들이나 기업체 CEO들이 한 번쯤 이번 지역 교육계의 독서운동에 동참'확산해 주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좋은 것은 아이들한테도 따라 배우는 좋은 '본'을 보여주는 것도 2세 교육을 봐서나 학향 도시의 부활을 위해서도 괜찮은 일일 것 같은데, 시장'지사님 등 지역 지도자분들의 긍정적 토론을 기대해 본다.

金廷吉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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