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채상우 作 '마늘 까는 여자'

마늘 까는 여자

채상우

그 여자 마늘 까는 여자 녹슨 놋쇠 대접만한 손으로 궁시렁궁시렁 마늘 까는 여자 삼칠일 지나고 하루 지나도록 아무도 그 여자 얼굴 본 적 없다네 던킨 도너츠 앞 사거리 횡단보도에 떠억 하니 세워진 덤프 트럭 시푸른 차일 속 비스듬히 돌아앉아 하루죙일 마늘만 까는 여자 사타구니 쩌억 벌리고 그 안 가득 마늘만 까대는 여자 육쪽마늘 한 접에 오천 원 팻말만 붙여 놓곤 손님이 와도 시큰둥 내다보지도 않는 여자 미어터지도록 깐 마늘 담은 비닐봉지 누가 슬쩍 집어가건 말건 그 여자 무심한 여자 곰 같은 여자 벌써 삼칠일 하고도 하루가 지났건만 아찔한 마늘 냄새 풀풀 날리는 토굴 속 웅크리고 앉아 육차선이 흘러 넘치도록 마늘만 까는 여자 사람들이야 퇴근을 하건 말건 주절주절 또 하루 저물도록 마늘 까는 여자 그 여자 귀신일까 사람일까 귀신은 아닐 거야 마늘 까는 귀신 본 적 있남 정말 곰인가 그래 곰이니까 마늘만 까먹고도 살지 암 그렇고 말고 그렇지

우리

엄마니까

마늘도 풀이다, 당연한 말씀. 고추, 파, 생강, 무, 오이도 다 풀이다, 당연한 말씀. 그러나 이 식용 초본의 목록에서 싱그러운 풀의 느낌을 읽어낼 사람은 흔치 않으리라. 인간의 입맛에 따라 무와 홍당무는 뿌리를 키웠고, 상추와 양배추는 잎을 부풀렸으며 감자와 마늘은 줄기를 발달시켰다는 사실. 그 중에서도 마늘은 비늘줄기, 꽃줄기(마늘종)도 모자라 어린 잎까지 식탁에 올려준다. 아낌없이 자기를 내어준다는 점에서 마늘은 "우리 엄마"를 닮았구나. 위장을 할퀴는 맵고 아린 맛에서 풋풋한 풀의 흔적을 찾을 수 없듯이, "사타구니 쩌억 벌리고" "궁시렁궁시렁 마늘 까는 여자"에게서 수줍고 다소곳한 여성성을 쉬이 찾을 수는 없을 터. 하지만 백일 동안 마늘만 먹고 견딘 그 옛날 곰처럼 "미어터지도록" "마늘만 까는" 엄마를 파먹고 우리는 자라났으니―.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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