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겨울방학 때의 일이다. 국내 모 대기업에 현재의 MP3에 해당하는 아이디어를 보낸 적이 있었다. 그 때에는 MP3라는 음향기기가 없었기에 '새로운 개념의 녹음기'라고 이름 지어 편지에 빼곡히 생각을 담아 보냈다. 당시의 우리나라 반도체 메모리 기술로 볼 때 충분히 개발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한 달 쯤 지난 후에 오천 원권 공중전화 카드와 함께 아이디어 채택 1차 심의 통과 후 2차 심의 중이라는 서신이 왔다. 적지 않은 기쁨을 주었다.
무엇이 기쁨을 주었는가? 창의학자 칙센미하이(Csikszentmihalyi)는 "어떤 사람이 새로운 생각이나 물건을 내놓을 때 반드시 전문가의 인정을 받아야 창의적인 것으로서 가치를 지닌다."고 했다. 아마도 나의 생각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창의적이라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자기만족이 주는 이상의 기쁨을 누렸던 것이리라.
한 2학년 학생의 생각공책에 깜찍한 생각이 배어 있는 그림을 보았다. 눈(目) 내리는 마을에서 눈(雪)싸움하며 즐겁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눈(目)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 학생을 찾아가 어떻게 그런 멋진 생각을 했는지 물어보고, 나 자신이 그림을 보면서 기쁨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림이 창의적이라 인정해 준 것이다. 그 학생의 생각공책은 요즈음도 창의성으로 넘쳐흐른다.
물질적 보상과 인정은 다르다. 창의성과 관련해선 더욱 그렇다. 물질적 보상이 창의성 신장에 긍정적이라는 학자도 있고 부정적이라는 학자도 있다. 어떤 학자는 초기에는 긍정적이지만 나중에는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하지만 필자는 창의성을 물질적 보상과 연관시키고 싶지는 않다. 다만 새로운 생각이나 결과물과 더불어 기쁨을 누리자는 단순한 차원에서 인정의 의미만 찾고 싶다.
그럼 어떤 생각을 인정하는가? 당연히 질 높은 생각을 인정해야 한다. 질 높은 생각이란 양이 많은 생각이 아니다. 아무리 많이 생각한다고 해도 일상생활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면 생각의 질이 높다고 말할 수 없다. 질 높은 생각은 생활 속의 패러다임을 깨트리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생각이다. 테이프를 재생하는 형태(아날로그)에서 MP파일을 재생하는 형태(디지털)로 음향기기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수 있는 생각, 눈(雪)이 아닌 눈(目)이 내리는 풍경을 상상하는 생각이 바로 질 높은 생각인 것이다.
그루버(Gruber)는 창의성을 '생각의 일탈'이라 했다. 여기서 '일탈'은 보편적인 흐름을 벗어난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생각의 일탈'은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가운데 가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롭게 생각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창의성은 그렇게 발현된다고 했다. 이제 어른들은 일상과 고정관념에 묶여 우리 아이의 유연한 생각을 스쳐 지나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때이다. 생각의 양에 사로 잡혀 오랫동안 책상 앞에 앉아 지식만을 채워 넣도록 요구하지 않았는지 돌아볼 시기이다. 우리 아이가 미래 사회의 주인공이 되길 바란다면 질 높은 생각을 스쳐 지나지만 말고 인정해주는 분위기를 형성해야 좋지 않을까. '생각의 일탈'을 인정받고 기쁨을 누리며 습관으로 형성될 때, 우리 아이의 창의성이 길러질 수 있으니 말이다.
이양조(대구영선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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