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말과 글이 흐르는 풍경)어떤 주례사

지난 일요일, 서울 메리어트 호텔에서 생질녀 결혼식이 있었는데 소설가 유현종씨가 주례로 나왔습니다. 가끔 제자들의 주례 부탁을 받고 억지춘향으로 끌려 나갈 때마다, 어떤 이야기로 주례사를 꾸려갈까 고민이 컸던 터라 '옳다구나, 저 유명 작가의 주례말씀을 잘 들어두었다가 써 먹으면 되겠구나'하고 메모준비부터 했었지요. 그런데 그분의 주례사는 너무나 평범했습니다. '첫째 효도하라. 둘째 건강하라. 셋째 서로 사랑하고 상의하라.' 잔뜩 기대하고 귀를 기울였던 나는 적이 실망할 수밖에 없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살아가는 데 있어 그보다 더 기본적이고 중요한 게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선택과 집중'의 논리가 사회 각 분야의 발전전략으로 자주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 논리를 뜯어보면 분명 '모 아니면 도'라는 한탕주의식 도박의 요소가 섞여있지요. 그런데 가끔은 이 논리의 안경으로 교육마당, 특히 기초·기본이 중시되는 초중등학교 현장을 들여다보려 는 시도가 있어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학교교육의 기본적 내용은 교육과정이며, 교육과정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것은 교과내용입니다. 교과에는 그 어느 것에나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질문이 있고, 교과 지식들은 그 질문에 답하고자 한 많은 사람들이 일생을 바쳐 탐구해온 결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교과를 가르친다는 것은 바로 그 질문을 제기했던 사람들이 겪었던 혼란과 그 혼란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을 때의 흥분과 기쁨을, 그리고 그 질문 해결을 위해 진행되었던 탐구의 과정을 학생들에게 체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드러내어 강조하는 창의성과 도덕성 교육도 교과 수업을 통해 실현될 수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공자님의 "學而時習之 不亦悅乎"나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 유레카!"를 교과 수업과정에서 경험하게 하는 것이 바로 훌륭한 창의성 교육이며, 또 세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살아 움직이는 인간의 고뇌로서 교과를 가르친다면 그 과정이 바로 진정한 도덕성교육이지요.

학교를 중심으로 제기되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 가장 유효한 방책은 결국 한 시간 한 시간 교과 수업을 정말 훌륭하게 전개하는 것이리라 생각하며, 루쉰(魯迅)이 한 이야기가 떠올려봅니다.

'돌팔이 의사가 시장에서 큰 소리로 빈대를 퇴치하는 묘책이 있다고 떠들어댔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돈을 내고 그 묘책이 적힌 종이를 샀는데, 층층이 다른 종이로 꼭 쌓여져 있었다. 조심스레 펴보니 단 두 단어의 묘책이 쓰여 있었다. 부·지·런·히·잡·아·라.'

김동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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