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경북 섬유산업의 '두 얼굴'

대구·경북의 섬유산업은 '두 얼굴'이 공존한다.

"어렵다.""죽겠다."며 아우성치는 섬유업계 전반의 목소리와 그 와중에서도 꾸준한 기술 개발과 틈새시장 개척으로 착실히 도약하고 있는 업체들. 이른바 빛과 그림자가 존재하는 것이다.

중국 등 후발국의 급성장으로 매년 수십 곳의 섬유업체가 쓰러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른바 '잘 나가는' 업체들은 이런 어려움이 남의 얘기 같다. 이들은 '섬유=퇴물 산업'이라는 인식이 위험한 발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 섬유산업의 두 얼굴-명(明)

성서공단에 위치한 (주)신풍섬유. 스포츠웨어 고기능성 섬유 개발을 통해 이 회사 생산품은 없어 못판다. 매년 5~10% 성장을 보이고 있는 것.

이 곳 권오경 기술연구소 소장은 "섬유도 기술개발을 하지 않으면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며 "신풍은 매출액의 10%를 무조건 연구개발비로 쓴다."고 했다.

연구개발 덕분에 이 업체는 각종 고기능성 섬유를 개발, 일부는 세계적인 '고어텍스'의 품질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달성군 현풍면에 있는 (주)티엔지코리아도 이른바 '잘 나가는' 섬유업체. 디지털프린팅 원단을 생산하는 이 업체는 매년 생산의 70% 가량을 수출하면서 30% 이상의 고성장을 보이고 있다. 비결은 틈새시장 공략.

김석열 대표는 "1993년 사업을 시작할 당시 DP(디지털 프린팅) 원단 쪽은 큰 시장에 비해 참여 업체가 많지 않았다."고 했다. 과잉 투자와 경쟁이 없는 섬유 블루오션의 경우, 잘 개척하면 어려움을 겪을 일이 없다는 것.

김 대표는 "앞으로 달성 2차 단지에 공장 이전을 통해 품목을 추가, 완제품 생산은 물론 인테리어 등 비의류 분야에도 진출할 것"이라며 또 다른 도전을 계획하고 있다.

잘 나가는 섬유업체들 간의 건설적인 모임도 눈길을 끈다. '텍스비전 21'이라는 협의회가 그 것. 산학연 협의회인 이 모임은 원단, 봉제, 패션 등 모든 섬유 분야의 업체들이 만나 섬유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활발한 정보 교환은 물론, 후배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김우종 회장은 "모임에 참여하는 업체들은 모두 다품종 소량 생산을 하는 업체들로 섬유에 대한 자부심도 남 다르고 앞으로 대구의 섬유를 다시 일으켜보자는 열의로 가득 차있다."고 설명했다. 텍스비전 21은 매년 4. 5차례의 전문 세미나를 갖는가 하면 각종 프로젝트도 공동으로 수행하면서 이른바 '공부하는 모임'으로 발전하고 있다. 김 회장은 "섬유가 앞으로 환경에 발 빠르게 변화한다면 충분히 희망과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조상호 한국섬유개발연구원 소장은 "섬유라 하면 모두 의류용 섬유로 국한시키다보니 어려움이 많다."며 "기능성과 산업용 섬유의 경우 아직 무한한 시장이 열려 있다."고 지적했다. 단지 대부분 섬유업체들이 방향성을 잡지 못해 불황의 늪에 빠져 있다는 것. 조 원장은 "기업주의 인식 전환과 정부의 '선택과 집중'이라는 틀에서 지원이 적절히 된다면 지역의 섬유도 일본처럼 선진국형 산업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 섬유산업의 두 얼굴-암(暗)

국내 최대의 원사생산업체인 한국합섬이 5일 결국 파산선고를 받았다. 한국합섬의 파산 소식을 기자에게 알려준 지역 한 섬유업체 대표는 '절망'이라는 글자밖에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잇따라 넘어집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5년 뒤엔 현재 대구·경북 섬유업체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도산하거나 포기 절차를 밟을 겁니다."

그는 지역 섬유업계가 벼랑 끝에 섰다고 했다.

특히 이날 도산한 한국합섬은 2001년까지 연매출 4천억 원, 직원 수 1천600여 명을 자랑하며 국내 폴리에스테르 원사 부문에서 생산능력 1위를 고수했었다. 하지만 거대 기업 한국합섬도 '세월'앞에 결국 무너졌다.

박노화 대구경북섬유직물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한국합섬의 파산으로 폴리에스테르 원사 공급에 차질이 생겨 원사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이는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지역 섬유업체들은 더욱 판로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뜩이나 침체에 허덕이는 섬유계로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것.

박 이사장은 "화섬업계에서 피부로 느끼는 경기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강규원 대성무역 대표는 "지역 섬유업체들은 대부분 매년 오르는 법정 최저 임금 탓에 가만히 있어도 원가가 계속 오르는 판"이라고 넋두리를 했다. 일반 화섬 직물이나 교직물 등 저가 품목들은 중국 등 후발국에 더 이상 경쟁이 되질 않아 앞으로 더욱 어려움에 직면할 거라고 그는 예상했다.

최근 한국섬유개발연구원이 공개한 '대구·경북 섬유산업의 변화와 혁신'이란 자료를 보면 섬유업의 절망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1998년 42억4천만 달러였던 대구·경북 섬유 관련 수출액은 2001년 23억500만 달러로 반토막났다. 2005년엔 22억7천100만 달러를 기록, 또 떨어졌다. 매년 겉잡을 수 없는 감소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 대구·경북 섬유업체 수는 2002년 3천600여 곳에서 2005년엔 2천700여 곳으로 줄었다.

일부 업체들은 '해외 집단 이전'이라는 고육책까지 생각하고 있다. 지역의 15개 섬유업체들이 지난해 말 역외공단조성협의회를 구성, 해외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는 것. 이들 업체는 현재 중국 요녕성 '해성시'와 베트남 '하 타이성', 인도 '뭄바이' 등 3곳의 후보지를 정하고 현지 실사중.

업계 관계자들은 "이미 경쟁력을 상실, 설비를 해외로 옮기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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