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남녀공학 10년] (上)겉은 양성 평등…속은 성적 불평등

남녀 공학에 다니는 남학생이 내신에서 실제로 불리할까.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 등 교육당국에서는 "전수조사가 없었기 때문에 검증되지 않은 의견"이라며 일축하거나 장점이 더 많은 제도라고 얼버무리고 있지만 상당수 교사, 학부모들은 성적 불평등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대구 수성구 ㅅ고교의 성적부를 들여다보면 단적으로 드러난다. 6일 학교측에 요청해 지난해 2학기 기말고사 성적을 분석한 결과, 문과(290명) 상위권 10%(29명) 가운데 ▷국어 문학은 여 24명, 남 5명 ▷국어 작문 여 22명, 남 7명 ▷수학 여 24명, 남 5명으로 나타났다. 자연계 상위권 10%(18명)에서도 ▷수학 Ⅰ과 Ⅱ 모두 여 10명, 남 8명이었고 ▷영어는 문·이과 통틀어 상위권 48명 중에 여학생이 39명으로 집계됐다. 이 학교 교장은 "우리 학교의 남녀 비율이 4대6꼴인데 현재 상위권의 성적분포는 이런 비율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곤혹스러워했다.

역시 수성구 ㅈ중학교. 남녀 비율이 비슷한 이 학교 1, 2학년의 지난해 과목별 성적을 비교해본 결과 국어·영어 각 6점, 수학 2점, 사회·과학 각 1점 등으로 여학생들 평균 점수가 5과목 모두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ㅂ중학교 한 교사는 "가족 신문 만들기나 한자 써오기 같은 숙제의 경우 여학생들이 시각적으로 예쁘게 만들고 꼼꼼히 해 오기 때문에 수행평가 성적이 앞설 수밖에 없다."고 했다.

ㅇ고교 교사는 "이런 현상이 일부 지역, 일부 학교가 아니라 전반적인 사정이라면 내신성적 산출방법을 바꾸든지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며 "학부모들이 공학은 남학생에게 불리하다는 얘기를 꺼내면 대답이 궁색해질 수밖에 없다."고 답답해했다. 이른바 '대구 4대 명문'으로 알려진 경북고, 경북여고, 대구여고, 대구고가 공학 전환을 반대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는 것.

각 대학이나 교육기관의 연구·통계 조사 결과도 이런 현상이 전국적인 추세임을 뒷받침하고 있다.

2003년 부산대 교육대학원에 제출된 '남녀공학 일반계 고교의 학업성취도 비교 연구' 논문에 따르면 부산의 8개 남녀공학 인문계 학교 1학년 학생들의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 과목 성적을 분석한 결과, 수행평가와 지필고사 총점에서 여학생 성적이 4과목 나은 학교가 더 많았고 영어에서만 비슷하게 나타났다. 현직 교사인 이 논문 작성자는 "공학에 다니는 남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내신성적에서 더 불리한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며 "이런 역(逆) 성차별을 개선하려면 과목에 따라 성별을 분리해 성적을 산출하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런 가운데 남녀별 내신을 따로 산출하는 학교까지 나왔다. 서울 한 사립고교는 2년전부터 남학생과 여학생의 내신을 분리하고 있다. "3학년이 되면 남학생이 수능성적에서 여학생보다 대체로 높게 나타나지만, 여전히 여학생의 내신이 좋기 때문에 남학생이 대입에서 불리하다."는 것이 이유. 내신분리가 가능한 이유는 현행 '학업성적관리시행지침'에서 공학 고교에 한해 학교장이 남녀를 별개의 '계열'로 인정해 성적을 산출할 수 있도록 규정(통칭 '교육부 훈령 676호')해 놨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서울시 교육청은 이 조항이 '동일 교과목을 이수하면 남녀 계열구분 없이 같이 성적을 평가해야 한다'는 7차교육과정 취지와 상충된다며 교육부에 질의를 해 놓은 상태여서 앞으로의 존속 여부는 불투명하다.

남녀공학은 교육당국의 행정편의적 속성이 강하다는 비판도 있다. 한 고교 교장은 "만일 공학이 없다면 남학교, 여학교간 인원이 불균형하게 되고 커트라인도 달라 배정에 큰 어려움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교육인적자원부의 한 평가담당 연구관은 "공학에 다니는 남학생의 내신이 불리하다는 조사가 이뤄진바 없고, 통계적인 근거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교 안팎에서는 정작 조사나 근거를 대야 할 교육당국이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남녀공학내 성적에 대한 연구물이 대학원 논문이나 개별 학교차원의 재학생 대상 조사가 거의 전부인 점을 감안하면 정부는 공학제도 도입이후 '현장 검증'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

송인정 전국학교운영위원회총연합회 대표는 "공학내에서 성별에 따른 학력차가 크다는 여론이 퍼져 있는만큼 교육당국은 일단 조사부터 하고 보완장치도 마련해야 한다."며 "조만간 총회에서 회원 학부모들과 이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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