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자판기 왼쪽 상단에 배열된 글자인 QWERTY에서 유래한 '쿼티(QWERTY) 경제학'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사람들의 의사결정이나 행동이 과거의 진행방향에 의존하게 된다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을 핵심으로 하는 이론이다.
1868년 크리스토퍼 숄스가 창안한 배열방식인 QWERTY 배열이 영문타자기 자판의 표준이 된 것은 단지 그것이 처음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타이프 바가 원형으로 배열되어 있어 자주 엉켰기 때문에 사람들이 타이핑을 빠르게 하지 못하도록 이처럼 불편하면서도 특이한 자판배열을 개발해낸 것이다.
컴퓨터 시대에 들어와서 인지공학자들이 사용성 편이를 위해 드보락(DVORAK) 자판기 등을 개발했으나, 아무리 좋은 대안이 나와도 이미 너무나 익숙해진 QWERTY 자판기 배열은 바뀌지 않고 있다. 영국의 기차바퀴 간격이 탄광의 수레바퀴 간격과 같다든가, 영연방 국가들의 차량 좌측통행 관습 등도 쿼티 경제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예들이다.
개인이나 사회의 오늘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과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은 "역사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설파한 E. H. Carr의 명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과거의 잣대나 관성 등 쿼티 경제학이 강조하는 사실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것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것들을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과학기술사에서도 몇 차례의 혁명이 있었다. 증기기관과 전기의 발명으로 인간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고, 화학의 발달은 물질적 풍요를 가져왔다. 과학기술 혁명사에서 가장 최근에 이루어진 혁명은 IT를 토대로 한 C&C(computer and communication)의 혁명으로 인터넷은 이의 상징이다.
인터넷의 발달에 따라 사람들의 의사소통은 자연스럽게 과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얼굴과 얼굴이 만나고 서신에 의존하는 오프 라인상의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 대신에 전화라는 음성과 음성 및 D와 ID를 통한 온라인상의 의사소통이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기술진보의 속도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라졌다.10년 전만 해도 E-Mail로 파일을 첨부해서 보내고 채팅만 해도 최신이더니 메신저를 통해 얼굴을 보면서 전화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홈페이지만 구축해도 정보화의 기수라며 뽐낼 수 있던 것이 엊그제인데 블로그를 지나 최근에는 사용자 제작 콘텐츠인 UCC가 각광을 받고 있다.
아울러 본능적·즉시적·참여적·충동적인 행위유발 환경을 지니고 있는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은 실명세계와 가상세계가 공존하고 일인다역의 다중 인간형의 출현이 일반적이다. 전통적 커뮤니케이션의 준거로는 이해하기 힘든 세상이 열리고 있으며,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은 과거의 전통적 커뮤니케이션 방식과는 차별화되고 단절된 속성을 시간이 흐를수록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속성들이 일반인들에게 친숙해지면서 블로그와 UCC의 영향력 역시 강해지고 있으며 금년 말 대통령 선거를 좌우할 변수로 UCC와 포털 사이트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최근 어느 국회의원의 전직 대통령에 대한 세배부터 지난 2006년 월드컵 때의 오심논란, 일본과의 독도문제 등 중요 국가 사회적 관심사에 대해 관련 홈페이지를 무차별로 공격해 서버를 다운시킨 우리 네티즌의 가공할 파괴력을 생각할 때 이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은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나 정신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살인·강도·도둑 등 오프라인의 중요 범죄는 온라인에서도 중대 범죄이고 자유·평등·민주·사랑 등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는 온라인에서도 여전히 귀중한 가치들이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과거와의 '단절이 아닌 단절'이 시대가 요구하는 준거가 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전부터 2000년 사이에 인간이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기본적으로 제시되었다. 흔히 말하는 인류의 4대 성인을 통해서 그 해답이 제시되었고, 칼 야스퍼스는 이를 인류정신의 중심축이라고 말한 바 있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의 내용이나 활동 역시 인류정신의 중심축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 지난 1일 선관위가 포털 사이트에 대선후보의 UCC 삭제요청을 한 것이 바른 것인가 역시 여기서부터 판단해야 한다.
임동욱(한국대통령학연구소 부소장·충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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