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사 분쟁에 쓰러진 '연매출 500억' 동방산업

"연 매출 500억 원을 자랑해온 15년 역사의 중소기업이 하루 아침에 문을 닫았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김의근(53) 씨는 지난해 12월 중순까지만 해도 제법 괜찮은 중소기업의 상무급 공장장이었다. 2개월이 지난 지금 그는 보수없이 회사 청산절차를 돕는 실직자로 전락했다.

포항의 동방산업(주). 종업원 70여 명의 소중한 삶터였던 이 기업의 해산은 우리나라 노사관계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나?

7일 포항공단 2단지 내 동방산업. 각종 제품과 자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생산설비는 녹슬고 있었다.

문을 닫은 지 50여 일.

그동안 회사는 월 평균 50억 원가량의 매출 손실로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고, 노조원을 포함한 모든 임직원은 일자리를 잃었다.

1992년 설립된 동방산업은 주방용품·산업기계 등의 원자재인 스테인리스 와이어를 생산하는, 연 매출 500억 원대의 탄탄한 기업으로 1천만 달러 수출탑도 받았다.

조합원 36명의 노조가 총파업에 들어간 것은 지난해 11월 15일. 임단협 협상이 돌파구를 찾지 못한 가운데 회사 측이 모기업인 (주)동방금속의 임가공 공장으로 전환을 검토하자 노조는 하청노동자로 전락한다며 반대, 양측 갈등은 증폭됐다.

이에 회사는 "더 이상 노조 눈치를 봐가며 기업할 수는 없다."고 몇 차례 통보한 뒤 파업 35일째인 지난해 12월 19일 서울서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전격적으로 해산을 결의했다. 이틀 뒤 모든 임직원들은 해고통지서를 받았다.

◆회사…"노조는 너무 심했다"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정규직법…, 이런 일이 우리 회사와 무슨 관계 있습니까? 임단협이 안돼 파업하는 거야 그렇다치지만 직원 70명에 불과한 중소기업에서 '정치파업'이 가당키나 합니까?"

김의근 전 공장장은 지난 한 해 동안 노조가 외부 문제로 파업했던 것만 따져도 40시간 가깝다고 주장했다.

또 노조 지회장, 상급단체 파견자 1명, 임단협 교섭이 진행되는 동안 교섭업무를 전담하는 위원 2명 등 36명 조합원 가운데 4명이 사실상 노조 상근이라는 점도 사측으로서는 인정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고 했다.

◆노조…"진짜 해산? 경영권 남용이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해산 결의까지 할 줄은 몰랐다. 노조를 핑계삼아 일방적으로 해산·청산절차를 밟아 버리는 것은 경영권을 남용한 것이고 노동자를 무시한 처사라고밖에 할 수 없다."

노조 사무실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홍훈식(35) 노조(민주노총 금속노조 포항지부 동방산업지회) 사무장은 "노조 간부로서 책임도 느끼지만 회사 측의 극단적 선택도 동정받기 어려울 것"이라며 "모기업을 포함한 그룹 내 구조조정을 위한 위장 청산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또 "장기파업이 노사 모두를 피해자로 만든다는 지적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노조 때문에 문닫았다는 사측 논리는 수용할 수 없다."며 "노사 모두 양보 없이 극단적으로 치달은 것에 대해서는 서로가 유감스럽게 생각할 일"이라고 했다.

◆불구경만 한 포항시와 노동지청

"포항 노사정 대화합 선언 분위기를 흐리니 노조가 정문 앞에 내건 플래카드나 떼주세요."

동방산업이 파국을 맞기까지 포항시, 포항노동지청 등 당국은 내용 파악은 커녕 '엉뚱한' 소리만 했다. 또다른 한 공무원은 "그 회사 노사관계는 노동부 소관"이라고 말했다. 시청의 고위 관계자는 "내가 진작 알았더라면 그렇게 놔두지는 않았을텐데…."라고도 했다.

포항노동지청 측은 "노사를 찾아가 많이 말렸지만 경영난으로 최종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회사를 말릴 수 없었다. 노조도 너무 막무가내여서 손 쓸 도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동방산업은 노사 갈등으로 청산까지 가는 과정에서 행정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다. 동방산업 한 전직 간부는 "지방세, 국세 가릴 것 없이 우리가 낸 세금 모두 돌려받는 소송이라도 제기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포항·박정출기자 jc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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