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다양한 시각으로 읽을 수 있다. 워낙 장대한 스케일인데다 등장인물이 많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이 소설의 주인공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이지만, 주인공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이 장대한 대하소설을 읽으면서 오직 한 사람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영웅적 삶에만 의미와 경의를 표한다면 너무 야박하다.
인간의 죽음을 이 소설의 근간으로 읽는 것도 좋다. 이 소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는다. 영웅도 죽고 필부도 죽는다. 안방에서 죽는 사람도 있고, 눈물을 머금고 할복하는 사람도 있고, 전장에서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른 채 죽어간 사람들도 많다.
이 작품의 주요 인물 중 한 사람인 오다 노부나가는 여러 반란을 진압하고, 유력한 지배자로 떠오른다. 조총으로 자신의 군대를 무장시켰으며, 누구도 이기리라고 생각하지 못한 여러 전투에서 승리한다. 그러나 전국통일을 눈앞에 둔 그는 혼노사(本能寺)에서 부하인 아케치 미쓰히데의 모반으로 밤에 습격 받아 자살했다. 그가 사망할 당시 전국시대 일본의 영웅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의 가신이거나 허약한 동맹자에 불과했다. 그만큼 노부나가는 막강했다.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사에서 습격을 받았을 때 주변에는 소규모 호위병 외에는 우군이 없었다. 노부나가 자신은 물론 아내까지 창을 들고 반란자들과 사투를 벌였다. 그러나 아내가 적의 칼에 죽자 노부나가는 자살했다. 포위된 상태, 불타는 절 건물, 이미 끝장난 싸움에서 오다 노부나가는 "일년만 더 시간이 있다면, 아니 한달 만, 아니 단 하루만 더 내게 주어진다면" 이라고 절규하며 자살한다.
또 다른 소설인 아사다 지로의 장편 '창궁의 묘성'에는 양희정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동치제 시절 장원을 차지한 수재로 광서제의 사부이며, 황제의 비서관인 남서방행주로 청나라 변혁을 꿈꾼다. 황제가 내린 신발인 줄 알고 신발에 발을 넣는 순간 정적이 신발 속에 숨겨둔 전갈에 물린다. 전갈에 물린 그가 비명을 지르자 호위 장교가 내실로 뛰어든다. 그는 장교를 향해 "다리를 잘라라. 어서 다리를 잘라라.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니다."라고 절규하며 죽어간다. 그는 기울어 가는 청나라를 살리고 싶었다.
오다 노부나가가 '단 하루'를 절규하며 죽었다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병들어 죽기 직전, 아직 어린 자식을 보살펴 달라며 가신들에게 애원했다. 힘이 센 가신이든, 힘이 약한 가신이든 구별하지 않고 연거푸 절하며 울었다. '제발 내 자식을 배신하지 말고, 죽이지 말아달라.'는 늙은이의 절규였다. 히데요시가 유언으로 남긴 시는 '몸이여, 이슬로 와서 이슬로 가니, 나니와(지금의 오사카)의 영화는 꿈속의 꿈이로다.'였다.
죽음이 왜 두렵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이들이 두려워했던 것은 죽음만이 아니다. 세 사람은 모두 시간을 원했다. 그러나 단순히 더 살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살아오면서 저질렀던 잘못이 아니라 평생을 살아오면서 마땅히 했어야 했지만 하지 못했던 일에 대해, 마땅히 말해야 했지만 하지 않았던 말에 대해 아쉬워하고 용서를 구하며 죽어갔다.
영웅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누구나 살아서 해내고 싶은 일이 있다. 그 일이 크든 작든 문제될 게 없다. 하루를 더 살아서 아내에게 '나는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 남편도 있었다. 미국에서 9.11테러가 발생했을 때 폭파된 비행기에 탑승했던 한 남자가 젊은 아내의 휴대폰에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이랬다.
'아무래도 마지막인 것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앞으로 당신이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나는 당신을 지지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다. 비행기가 폭발하고, 지진이 발생하고, 메가 톤급 폭탄이 터져 수십 명, 수백 병, 수천 명이 나와 함께 죽는다 할지라도 죽음은 언제나 개별적이며 위안이 되지 않는다. 그 개별적인 죽음 앞에 사람은 두려워하며, 각자의 인생을 생각한다. 그래서 각자가 하고 싶었던, 그러나 하지 못했던 일과 말에 대해 생각한다.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이미 읽은 독자라면 '한 영웅의 영웅적 투쟁'이 아니라 '미완의 종말'을 맞이해야 했던 수많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읽어보시기를.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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